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 - 브레히트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 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가끔씩 인터넷 포털 뉴스에 유명인들의 소식이 들립니다. 주식을 상장해서 몇천억을 벌었다느니, 몇백억 저택을 마련 했다니, 혹은 수십억 빌딩을 구입했다느니 하는 소식입니다.
사실 그런 뉴스를 읽을 때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쓰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어떤 롤 모델을 제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도 뭔가 투자를 해야 할 때이며, 지금이 적기이다.' 혹은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산다면 당신에게도 희망이 있다' 아니면 그들을 부러워하도록 우리에게 독려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 이 사람 참 부럽지?' 우리는 정말,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돈' 은 우리의 '신(god)' 입니다. 제가 언제나 물어보고 싶은 말은 이것 한가지 입니다. '당신의 그 넘치는 돈이, 당신 자신에게 진실로 합당한 것입니까?'
극도로 분노한 사람은, 실상 화를 내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오히려 평상시 보다 훨씬 차분해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그 사람이 정말 분노했다는 증거입니다. 장 지글러의 글을 며칠간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분노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사회학자이며 교수로, 그리고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그는 세상의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소중한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서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짧은 문장들로 그의 글을 엮어 갑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세계의 6분의 1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열살 미만 아이가 기아로 인해 7초에 한명씩 목숨을 잃고, 6분에 한명씩 시력을 잃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구상에 있는 음식은, 인류가 함께 먹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강자의 억압으로 이루어진 구조 속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을 발판삼아 누군가는 부자가 되어 갑니다. 제 3 세계의 그리고 우리 주변의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는, 저 임금과 가난과 기아 속에서 고통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전혀 개선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의 피와 땀 속에서 부를 쌓아 갑니다.
사실상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지 못하는 왜곡된 시각' 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고 자란 저와 같은 사람들은, 기아라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배웁니다. 가난은 나랏 님도 해결할 수 없다고 듣습니다. 구제라는 것은 그저 개인의 연민에서 나오는 개인의 행위에 국한시켜야 한다고 압니다. 우리는 평등한 기회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보장 된다고 믿습니다. 너의 경제적인 문제는 너가 노력을 덜 해서 그런 결과를 맞이한다고 학습됩니다. 사회와 인류에 대한 고민은 사치라고 듣습니다. 정당한 논리를 권위에 대한 반항이라고 면박을 받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 즉 돈의 흐름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는 자유만이 최고의 길이라고 배웁니다. 사회와 자본과 억압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들은, '파란색'이 아니라 '빨간색' 이라고 불립니다. 놀랍습니다. 누가 우리의 눈을 가렸습니까? 누가 우리의 마음을 왜곡시켰습니까? 진실로 대중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만' 을 보고, 오직 그것을 끊임 없이 '재생산' 할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천국에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옥에 살고 있습니까? 굳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다만 이 세상 속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를 통한 억압받고 가난한 자들을 향한 평등과 행복과 구원의 메시지가, 얼마나 소중하고 놀랍고 기적적인 것인가를 다시 한번 절절히 생각하게 됩니다. 어둠 그 자체인 어두움 가운데,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본주의는 이제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10년 20년의 끝은 아니나,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진자들의 수탈이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고, 점점 그들이 약자들로 부터 가져가고 있는 몫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자들의 억압이 극에 달한 그때,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들의 신원이 하늘에 닿은 그 때, 그리고 주의 천국이, 가난한자들의 진실한 마지막 소망이 되었을 때에, 어쩌면 그 때가, 우리 주님의 재림의 때인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차분해 집니다. 제가 해야할,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준비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바래봅니다. 내가 오늘 한끼를 먹었다고 해서, 굶주려 배를 붙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내가 조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해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영혼들을 망각하지 않기를,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마땅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끊어지지 않기를, 내 영혼이 탐욕의 짐승이 되어 버리지 않기를, 나의 지식과 노력과 인생이, 하나님의 의와 공평과 자유와 사랑이 이 땅에 실현되는 그것에 사용될 수 있기를.. (시편 72편 4절 -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그래서 오늘도..
p.s. 책의 인상적인 부분 따로 발췌했습니다. 검색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테그 '독서 발췌'
사실 그런 뉴스를 읽을 때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쓰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어떤 롤 모델을 제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도 뭔가 투자를 해야 할 때이며, 지금이 적기이다.' 혹은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산다면 당신에게도 희망이 있다' 아니면 그들을 부러워하도록 우리에게 독려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 이 사람 참 부럽지?' 우리는 정말,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돈' 은 우리의 '신(god)' 입니다. 제가 언제나 물어보고 싶은 말은 이것 한가지 입니다. '당신의 그 넘치는 돈이, 당신 자신에게 진실로 합당한 것입니까?'
극도로 분노한 사람은, 실상 화를 내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오히려 평상시 보다 훨씬 차분해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그 사람이 정말 분노했다는 증거입니다. 장 지글러의 글을 며칠간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분노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사회학자이며 교수로, 그리고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그는 세상의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소중한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서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짧은 문장들로 그의 글을 엮어 갑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세계의 6분의 1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열살 미만 아이가 기아로 인해 7초에 한명씩 목숨을 잃고, 6분에 한명씩 시력을 잃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구상에 있는 음식은, 인류가 함께 먹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강자의 억압으로 이루어진 구조 속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을 발판삼아 누군가는 부자가 되어 갑니다. 제 3 세계의 그리고 우리 주변의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는, 저 임금과 가난과 기아 속에서 고통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전혀 개선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의 피와 땀 속에서 부를 쌓아 갑니다.
사실상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지 못하는 왜곡된 시각' 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고 자란 저와 같은 사람들은, 기아라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배웁니다. 가난은 나랏 님도 해결할 수 없다고 듣습니다. 구제라는 것은 그저 개인의 연민에서 나오는 개인의 행위에 국한시켜야 한다고 압니다. 우리는 평등한 기회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보장 된다고 믿습니다. 너의 경제적인 문제는 너가 노력을 덜 해서 그런 결과를 맞이한다고 학습됩니다. 사회와 인류에 대한 고민은 사치라고 듣습니다. 정당한 논리를 권위에 대한 반항이라고 면박을 받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 즉 돈의 흐름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는 자유만이 최고의 길이라고 배웁니다. 사회와 자본과 억압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들은, '파란색'이 아니라 '빨간색' 이라고 불립니다. 놀랍습니다. 누가 우리의 눈을 가렸습니까? 누가 우리의 마음을 왜곡시켰습니까? 진실로 대중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만' 을 보고, 오직 그것을 끊임 없이 '재생산' 할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천국에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옥에 살고 있습니까? 굳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다만 이 세상 속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를 통한 억압받고 가난한 자들을 향한 평등과 행복과 구원의 메시지가, 얼마나 소중하고 놀랍고 기적적인 것인가를 다시 한번 절절히 생각하게 됩니다. 어둠 그 자체인 어두움 가운데,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본주의는 이제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10년 20년의 끝은 아니나,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진자들의 수탈이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고, 점점 그들이 약자들로 부터 가져가고 있는 몫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자들의 억압이 극에 달한 그때,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들의 신원이 하늘에 닿은 그 때, 그리고 주의 천국이, 가난한자들의 진실한 마지막 소망이 되었을 때에, 어쩌면 그 때가, 우리 주님의 재림의 때인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차분해 집니다. 제가 해야할,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준비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바래봅니다. 내가 오늘 한끼를 먹었다고 해서, 굶주려 배를 붙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내가 조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해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영혼들을 망각하지 않기를,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마땅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끊어지지 않기를, 내 영혼이 탐욕의 짐승이 되어 버리지 않기를, 나의 지식과 노력과 인생이, 하나님의 의와 공평과 자유와 사랑이 이 땅에 실현되는 그것에 사용될 수 있기를.. (시편 72편 4절 -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그래서 오늘도..
p.s. 책의 인상적인 부분 따로 발췌했습니다. 검색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테그 '독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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