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번주에 참석한 예배는 어떠셨나요? 은혜를 많이 받으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혹은 어느 정도 실망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처럼 모태 신앙인 평범한 성도가 서른셋까지 드리는 예배의 횟수를 대략 계산해 보았습니다. 한주에 두번, 1년에 백번으로 잡아도, 대략 3천번 정도가 됩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은 예배에 참석했지만, 예배가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본적은 참 적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배의 하나하나의 과정을 묵상해보고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은 성도님들에게, 사실은 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장로교 교회 안에서 인정받는 리디머 처치의 예배를 참석하고 고민해 보는 것은 저의 인생 가운데, 그리고 읽으시는 당신의 인생 가운데도 중요한 분기점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성경을 통독한 것은 아마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부터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늘 마음에 궁금했던 던 한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우상숭배' 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우상숭배' 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우상 숭배라고 생각하면 금방 구약이 떠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춤을 췄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가운데 우상을 만들지 말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상을 섬기지 마라' 라는 당위적인 명령을, 구약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듣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불교의 부처상 혹은 사람들이 섬기기 위해서 만든 여러 종류의 우상들 혹은 조상들을 모셨다는 명절의 제사상 앞에 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을 다루는 설교에서 우상 숭배가 중요한 주제가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나라가 망하게 만든 결정적 죄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신약은 어떻습니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신약 속에서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혹은 설교를 들을 때 우상숭배가 그렇게 강조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상 숭배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주제로 나타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약을 다루는 설교에서는 흔히 '예수님', '성령님', '교회',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 '선교', '구제' 라는 주제 등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논리적인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구약과 신약의 단절입니다. 구약에서 성도들에게 우상숭배를 금하라 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면, 이제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주제는 아니게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현대 교회에서 저를 포함한 성도님들이 드리는 예배는, 암묵적으로 우리가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않든지 몇가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게 됩니다. 즉 그 예배를 드린 이후에,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으로 뜨거워지며, 교회가 흥황하며, 공동체가 든든해지며, 선교에 대한 열정이 살아나고, 구제에 더 힘을 쏟게 되는 것들이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렸는가에 대한 아주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설명하지만, 구약은 구약일 뿐입니다. 그 시대에는 우상 숭배가 가장 큰 주제였다면, 이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결코 선교나 구제나 공동체 등등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님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팀캘러 목사님이 그의 글 가운데 바로 이 부분을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설교의 적용의 부분에서 구약의 역사를 '우상숭배' 라는 관점으로 정리한 이후에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 Sum : So, the OT is understood grid of idolatry. God is king, but we tried to keep control and power worshiping and serving created things. They in turn, set up a kingdom of darkness that blinds and enslaves. The prophets say that someday, the King will return and free us. But we can't read the NT through the grid of idolatry, can we? It is seldom mentioned. And moreover, idolatry is not relevant at all for us today, is it? - 'getting down to earth 3' of Preaching the Gospel in a Post Modern World / Edmund P. Clowney, Timothy J. Keller
- 요약 : 즉 구약은 우상숭배로 점철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에 불과한 것들을 섬기거나 경배하는데 힘을 쏟거나 조작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그것들은(우상들은) 교대로, 사람들을 노예로 삼거나 눈을 멀게 만드는 어둠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선지자들은 언젠가, 진정한 왕이 돌아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실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신약에 속한) 우리는 우상 숭배의 만연이라는 관점으로 신약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방식은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상숭배라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전혀 적절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하 정목사 해석)
이것이 바로 팀캘러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입니다. '구약에서 우상 숭배는 그토록 절대적이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을 파괴하는 적이었는데, 이제 신약에 있어서 그것은 어디로 갔습니까?' 라고 우리에게 진지하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탁월한 점입니다. 그는 신약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 역시, 구약과 동일하게 '우상숭배' 임을 논증합니다. 그리고 그는, 제가 이해하기로 사실상, 복음을 인생에 적용하는 그의 탁월한 설교 가운데 우상숭배라는 주제를 가장 '핵심적인 도구' 로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에서 요약하여 좀더 인용해봅니다.
- It is typical to think that “idolatry” is mainly an Old Testament phenomenon, but closer examination shows that it is not. A couple of texts provide clues to the fact that pervasive human idolatry was assumed by the New Testament writers.
- 우상숭배가, 주로 구약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전형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면밀한 관찰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몇개의 성경 구절들은, 만연한 인간의 우상숭배가 신약의 저자들에 의해서 이미 가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1. Idolatry is at the root of all sin--in fact, it is the only way to understand sin.
우상숭배는 모든 죄들에 근원입니다. 사실 그것은 죄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 2. Idolatry is at the root of every heart--it is the only way to understand motivation
우상숭배는 사람의 모든 마음의 근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사람들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 Sum: This means then, that idolatry is always the reason we ever do anything wrong. Why do we ever lie, or fail to love or keep promises or live unselfishly? Of course, the general answer is “because we are weak and sinful”, but the specific answer is always that there is something besides Jesus Christ that you feel you must have to be happy, something that is more important to your heart than God, something that is spinning out a delusional field and enslaving the heart through inordinate desires. So the secret to change (and even to self-understanding) is always to identify the idols of the heart.
- 요약 : 그러므로 이것은, 우상숭배는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바로 그 이유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우리가 거짓말하고 혹은 사랑하는데 실패할까요? 또한 약속을 지키는데 그리고 이기적이지 않게 살아가는데 실패할까요? 물론, 일반적인 대답은 우리가 연약하고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대답은 항상 이것입니다. 즉 당신에게,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느끼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당신의 마음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그것입니다. 그것은 지나친 탐욕들을 통해 당신을 현혹시키는 영역을 유지하는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노예처럼 만들어버리는 어떤 것입니다.
- 3. Idolatry is at the root of all unbelief and, to some degree, every culture.
- 우상숭배는 모든 불신앙과 어느 정도에서는 모든 문화의 뿌리입니다.
- Sum: At the root of all problems (personal or social), and of all non-Christian philosophies and ideologies is the elevation of some created thing to the place of ultimate worship and ultimate arbiter of truth and meaning.
- 모든 문제들 (개인적인 것이든, 혹은 사회적인 것이든) 의 뿌리는, 그리고 모든 불신자들의 철학들과 사상들의 뿌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들을 궁극적인 예배의 자리에 그리고 진리와 의미에 대하여 궁극적인 조정자의 자리에 올려 놓는 것입니다.
자, 이제 팀캘러의 생각이 어느 정도 갈피가 잡힙니다. 그는 인간의 삶과 철학과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그것의 어그러진 그 근본에 우상숭배가 있음을 간파합니다. 우상숭배는 단순히 어떤 형상 앞에 절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외의 그 어떤 것에 대하여 탐욕을 부림으로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것, 그리고 바로 그것에 의하여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판단되고 움직이는 것, 바로 그것이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행하고 있는 '예배' 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두가지 예배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우상숭배' 그리고 '참된 예배' 입니다.
그렇다면, 리디머 처치의 예배는 어떻게 다를까요? 예배가 시작되기 전 울려퍼지던 모든 아름다운 음악이 끝났을 때, 예배를 진행하는 목회자가 소박한 보면대 앞에 서서 했던 멘트가, 바로 위의 그 내용을 압축한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오전 예배와 오후 예배 진행자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멘트는 아주 유사했습니다. 즉석에서 단순히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멘트가 아니라, 리디머 교회가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의 결과를 짧은 몇 문장 안에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지난 글에 설명해 드린 주보의 Reflection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었습니다.)
대충 기억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당신이 만약에 다른 어떤 것들, 당신의 젊음이나 지성이나 다른 어떤 것들을 예배한다면, 당신은 언제나 실망하고 공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자리에서 우리는 유일한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섬깁니다. 예배란, 하나님 당신만이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고, 당신 안에서는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것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예배 드리러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다 같이 일어설까요?'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였구나! 단순히 뜨거운 열정을 드리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저 종교적인 의식 중 하나도 아닙니다. 그저 내 감정을 고양시키는 자리도 아닙니다. 무작정 공동체성을 기르거나 선교를 다짐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단순히 우리의 행위를 변화시키기 위한 자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나타나는, 타락한 인간과 사회의 자연적인 예배를 거절하고 그것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섬기는 타락한 예배를 회개하고 통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예배 받기 합당한 한분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 십년 동안의 어려움과 고민들이 이제서야 많은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참된 예배'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떠신지요? 저와 당신은 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우리의 예배가 조금은 더 달라질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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