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의 자율학습 시간은 (물론 어떤 의미에서 자율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가지로 곤욕이었습니다. 역시나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더위' 였습니다. 혈기 왕성한 남자 학생들이, 겨우 몇대의 선풍기가 돌아가는 좁은 교실과 책상 속 (왜 그렇게 학교 책상은 사이즈가 작을까요?) 에서 공부하라는 것은, 뜨겁운 형벌이 영원히 지속되는 지옥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 인생과 실제로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희망은 있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시원한 수박 한입처럼, 언제나 고급 수준의 독서를 지향하는 제 친구가, 동네 서점에서 '무협지'를 빌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때,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무협지를 읽었습니다. 다소 변명처럼 느껴지시겠지만, 그때의 더위는 하물며 무협지를 읽기에도 무리였습니다. :)
흥미로운 것은, 하루만에 한 시리즈를 다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지 몰라도, 늘 제 친구는 3권이 완결인 무협지를 빌려왔습니다. 아침 1교시에 첫권을 시작하여 기승전결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짜릿함은,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기억하는 무협지의 일반적인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등장 => 재난 => 원수가 생김 => 원수에 대한 1차 도전 => 처절한 실패 => 큰 상처를 입고 깊은 계곡 등지에 떨어짐 => 동시대가 아닌 최소 200년 이상 전에 이름을 날렸으나 놀랍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무림의 '기인' 을 만남 => 기인의 무공 전수 => 원수에 대한 2차 도전 => 승리
어쩌면 이 때부터 제 머리 속에, 아니 제 영혼 속에 새겨진 단어는 '기인' 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탁월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혹 주변에 그런 책이나 사람이 있다면 절대 놓치지 마시길) 답답한 나의 재능의 수준에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가르침과 지도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기독교를 '배움'의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저는 모든 이들에게 '기인' 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독교는 결코! 배움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런 부분에서 한가지, 오늘 작은 나눔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설교에서의 적용' 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모든 목회자에게 있어 '적용' 이라는 것은, 가장 큰 골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목회자의 설교라는 틀은 이렇게 구성 됩니다. 성경 해석 혹은 주해 =>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원리 발견(대부분 law의 관점에서 접근) => 그 원리를 적용할 영역(field) 찾음 => 우리는 그렇게 해야한다 라는 주장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상식적인 틀은 말 그대로 식상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식상하다고 해서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좀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방식의 설교와 적용은, 제 소견으로는,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서 팀 켈러는, 어떤 의미에서 식상한 틀 안에 갖혀 있는 저와 같은 목회자에게 좋은 통찰력을 줍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팀 켈러는, '서양의 박영선'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글을 먼저 인용해 봅니다.
The main problem, then, in the Christian life is that we have not thought out the deep implications of the gospel, we have not "used" the gospel in and on all parts of our life. Richard Lovelace says that most people's problems are just a failure to be oriented to the gospel--a failure to grasp and believe it through and through. Luther says, "the truth of the Gospel is the principle article of all Christian doctrine... Most necessary is it that we know this article well, teach it to others, and beat it into their heads continually." - preaching the gospel in a post-modern world.
핵심은, '복음을 모든 영역 속에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 입니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모든 영역' 과 '철저' 입니다. 그래서 팀켈러가 사용한 think out 이란 숙어가 굉장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고안해 내다, 궁리해 내다, 숙고하여 해결하다' 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요. '복음을 모든 곳에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 팀켈러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그의 접근, 복음을 적용하는 관점에 있어서 예를 들어 봅니다.
Approach to one's family. - Moralism can make you a slave to parental expectations, while pragmatism sees no need for family loyalty or the keeping of promises and covenants if they do not "meet my need" The gospel frees you from making parental approval an absolute or psychological salvation, pointing how God becomes the ultimate father. Then you will neither be too dependent or too hostile to your parents. - preaching the gospel in a post-modern world.
그의 설교의 적용까지 가는 관점을, 그의 글을 통해 제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이 어떤 철학 혹은 생각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지에 대한 분석 (위의 글에서는 도덕주의와 실용주의를 사용했습니다) => 그것이 성도에게 혹은 사회에 어떻게 악하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 (위의 글에서는, 도덕주의 안에서 사람은, 부모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며, 실용주의 안에서 사람은, 가족이 나에게 가치가 없다면 가족을 버린다는 관점으로 파악했습니다) => 복음은 왜 그것에 대해서 대안이 되는지에 대한 대안 제시 (위의 글에서는 하나님께서 완벽한 아버지가 되시기에, 우리 자신의 부모의 허락만 절대적으로 여기던 연약한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설명합니다) => 실제적 삶에서 복음의 적용점 정리 (결국 복음 안에서 크리스천은 부모에게 너무 의존적이지도 혹은 적대적이지 않게 된다.)
팀켈러의 통찰이 너무 놀라워 어안이 약간 벙벙한 상태이지만, 제 개인적으로 이러한 '적용의 방식'에 대한 관점에 대해 생각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세상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흐름과 인생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행동들에 대해서, 엄청난 분석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을 보며 행동을 고치라 라는 접근이 아니라, 그 행동의 내면의 동기와 살핀다는 것입니다!(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물론 그것이 결론적으로는 어떠한 주의(ism)으로 분석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우선적인 문제는, 목회자의 영혼과 마음 안에,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단 하나의 사실도 놓치지 않는 예리한 관찰이, 그리고 그것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복음이 실제로(혹은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현재 속에서) 그러한 행동 혹은 문제에 대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이 단순히라는 표현이 오해되지 않기를 바라며) 복음이라는 것이 죄 사함이다 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혹은 아쉽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팀켈러의 이 말은 주의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All of life is repentance--not just for sins, but also for our false "righteousness(es)"
- any failure of actual righteousness is always a failure to live in accordance with our imputed righteousness. We make something besides Jesus our real hope and life. So believing the gospel means to repent, not just of our sins, but of the particular (self) righteousness(es) underlying our behavior. That is the secret of change. - preaching the gospel in a post-modern world.
다시 풀어서 그의 말을 적어보자면, 실제의 인생에 있어서 실패는, 참 소망되시는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의로움들을 의지하게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의 근본 혹은 기초가 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의 회개란 단순히 우리의 죄 (예를 들어 십계명을 범한 죄) 에 대한 회개만이 아니라, 우리의 깊은 내면 속에 있는 나의 우상들 (예를 들어 자기 확신, 돈과 명예를 의지함 등등) 을 회개하는 것 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결국 성도의 그 행동의 내면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그의 설교를 이끌어가는 논리는 이러한 식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정리(심리적이고 사회학적인 틀을 자유자재로 사용) => 충분히 확장된 복음을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적용 => 결국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밑바닥의 숨겨진 곳에서 부터 변화를 꾀함
결론적으로, 제 스스로를 위해서 정리하며 다시 한번 반복한면 이렇습니다. 결국 팀켈러처럼 폭 넓고 적실(適實)한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와 인간의 내면까지 분석할 수 있는 엄청난 분석력과 지혜가 필요하고, 그리고 단순히 다음 세상을 향하는 복음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활동하는 복음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이만큼 정리했으니 이제 한숨 돌립니다.
그리고 이제 기도하며 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주님, 그렇다면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합니다.
언제나 목회와 설교는,
제가 상상하던 그 이상의 어려움이고,
완전히, 제 능력의 바깥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경험합니다.
혼란, 당황, 절망 이것이 저의 솔직한 내면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영원한 소망과 지혜 되시는
나의 주님 안에서
오늘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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