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2일 월요일

영혼을 비난하는 사람 vs 영혼을 돌보는 사람


목회라는 것은, 영혼을 돌보는 것입니다. 정의는 매우 단순하지만 그러나 그 깊이는 감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크기는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쉽습니다. '왜 그 사람은 그것밖에 되지 못하는가' 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영혼의 어려움을 살피고, 그 약한 부분을 가늠하면서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섬기는 것은 목회자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강의는 훨씬 일방적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정말 탁월한 강의를 제외하고서는 영혼을 진실하게 돌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북클럽은 그 자체가 상호간의 관계입니다. 인도자는 참여자에게 물어봅니다. '오늘 읽은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나눠주시겠어요?'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목회자는 드디어 그 사람의 영혼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목회가 시작됩니다. 

한국에서 만난 몇분과 북클럽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의 이유는 단순합니다. '목회의 마음' 때문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영혼의 필요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기 때문에 함께 모임을 시작하자고 권면했습니다. 

오늘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북클럽을 인도하면서 실망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모임마다 특별함은 항상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진실한 나눔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혼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내면 깊이 있는 진실한 갈망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그 사람을 더 변화시키는데 힘을 쏟고 싶습니다. 제 삶을 다 해서, 누군가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라고 믿습니다. 

북클럽은 단순히 책을 읽고 나누는 모임이 아닙니다. 영혼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오늘도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됩니다. 저의 소명을 따라 한걸음 더 전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의 평생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삶으로 드리는 찬양 (173) - 구원자 주 예수

 


1. 가사 살펴보기

구원자 주 예수 하나님의 아들
귀하신 어린양 메시야 거룩하신 하나님

예수 나의 구주 놀라운 그 이름
귀하신 어린양 메시야 죄인 위해 죽으셨네

영광 중에 설 때 주 얼굴 뵈옵고
왕 되신 주 그 곳에서 영원토록 섬기리 

오 하나님 감사해 독생자 주시고
또 성령님 보내사 주의 일을 이루시네

 

2. 곡 소개

곡은 박종호씨의 4집 앨범에 수록된 곡이고, 원곡은 Melody Green There Is a Redeemer 이다. 이 곡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를 대속하시는 메시아이시며,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그 구원을 이루신다는 깊은 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마태복음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11:27 "All things have been committed to me by my Father. No one knows the Son except the Father, and no one knows the Father except the Son and those to whom the Son chooses to reveal him.

이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모든 것을 공유하십니다. 두분 사이에는 친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Lyman Coleman, ed., Life Connectio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s, 2019), 1550.

베드로전서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18 For you know that it was not with perishable things such as silver or gold that you were redeemed from the empty way of life handed down to you from your forefathers,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1:19 but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 lamb without blemish or defect.

구약에서 오실 구원자를 상징하는 그림으로써 제물로 바쳐진 어린 양은 모든 면에서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피가 귀한 것입니다.

The Wartburg Project, Holy Bible: Evangelical Heritage Version Study Bible (Midland, MI: Northwestern Publishing House; Wartburg Project, 2019), 1 Pe 1:19.

로마서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개역개정) 8:4 in order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ly met in us, who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 (NIV)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신자들은 의로움을 얻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그들은 율법의 본질, 즉 사랑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습니다. 성령님은 신자들 안에 거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Ro 8:4.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기독교 구원이 무엇인가를 탁월하게 드러내는 곡이다. 특별히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꺼이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저 성인 중에 한명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분이야 말로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그리고 죄인을 대신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자신의 아들을 죄인을 위하여 내어 주셨으며, 성자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시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은 자 안에 함께 하시면서 새로운 힘을 주신다. 타락한 인간은 그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성자 하나님의 순종과,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은 모두 하나로 연결이 된다. 성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바라기는 이러한 복 된 삶을 끊임없이 누리고 또한 추구하며 살아가시기를 기도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어두워도 어둡지 않다, 길이 있다면 (공동체, 그리고 성장) - 한국에서의 안식월을 마무리하며


한달이라는 시간이 꿈처럼 흘러갔습니다. 11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미국의 집으로 돌아오니 언뜻 보면 마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록으로 남겨둔 한달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더 소신을 가지고 가늠해 봅니다. 

한국의 밤거리가 참 좋았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안심하고 밤에 걸어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안전한 곳도 조심스럽고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나라에서 걷는 한걸음 한걸음은 그렇게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가로등이 참 좋았습니다. 길을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에 자칫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두려움이 몰려올 때에, 보이는 길을 따라서 걸어가면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두움이 아닙니다. 그 어두움 가운데에서 나의 길을 분명히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길을 따라서 자신감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황금과 같은 한달을 돌아보며 두가지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첫째는, '공동체' 입니다.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진실하고 깊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나 흥미롭게도,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공통된 갈망은 공동체 였습니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공동체를 공고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깊은 신앙을 가진 분들의 한결같은 바램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분들의 진실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저는 목회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목회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공동체를 세우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항상 아쉬운 부분들은, 어떤 활동 혹은 교육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이런 것들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으로 스스로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진정한 공동체성을 만들고 있는가가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만드는 실제적인 전략들, 예를 들어서 세대간에 기도 파트너를 만든다든지 혹은 청소년들에게 특별 활동을 하게 한다든지 모든 것들은 결국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누군가 보기에 이러한 전략들은 지나치게 소소하고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를 견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성경적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탁월한 전략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다시 한번 북클럽을 생각했습니다. 가장 깊은 대화를 누릴 수 있는, 서로를 알아가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할 수 있는 북클럽이야 말로 진정한 공동체성을 만들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속에서 북클럽을 추구해 왔다면, 또 다른 관점으로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북클럽은 주님의 공동체를 만들고 견고하게 변화시키는 최고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꾸준하게 목회의 중심에 북클럽의 DNA를 두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둘째는, '성장' 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정체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정말 많이 성장한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성장은 성화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열정, 신앙의 깊이, 그리고 세상을 보는 안목에서 탁월하게 변화된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성장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얼만큼 성장하였는가?' 서른 셋에 한국에 방문했던 저와, 이제 마흔 넷이 되어 한국에 방문한 저는 과연 얼만큼 성화되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또 한편으로는 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항상 북클럽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북클럽이라고 하면 한가롭게 책이나 읽는 모임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클럽은, 가장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책을 깊이 읽고 자신을 돌아보고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몸부림입니다. 

그런면에서 제 자신을 다시 한번 정의하였습니다. 단순히 북클럽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 북클럽에 항상 몸을 담고 인도하고 계속 성장하는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평생의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온전히 달라진 일상입니다. 지나간 시간들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걸어가는 길도 어쩌면 여전히 어두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래라는 것은 큰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 길을 비춰 주십니다. 저는 그 길을 보고 있습니다. 길이 분명하기에 저는 담담히 그러나 담대하게 걸어가겠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안식월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제 자신의 앞 날을 오직 주님의 뜻 안에서 만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 4월 11일 목요일

나의 모교에서, 마음이 통하는 한 사람을 만나다 with 이동열 교수님

 


11년만에 모교인 합신을 방문했습니다.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시골 길에 한적한 곳에 있던 학교는 이제 그 높이를 가늠할 없는 빌딩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주변은 변했지만, 학교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당당하게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합신은 언제나 저에게 따뜻함 입니다. 철없던 시절 그저 막내의 기쁨을 누리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때로는 숙제에 치여서 때로는 개혁주의 신학에 깊이 들어가서 감격하면서 그렇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의 근간이 바로 합신에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학 교수로 섬기시는 이동열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교수님이 사우스웨스턴 신학교에서 PhD를 할 때에, 저는 DMin을 하면서 함께 교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합신 동문이기도 하고 저의 후배이기도 하지만, 친구처럼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저는 이교수님을 정말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학위를 받는다는 결과는 같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결과를 위하여 얼만큼 노력하고 얼만큼의 깊이를 만들어내는가는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이교수님은 ‘진짜’입니다. 

합신에서 교수로 섬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정말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에서 누가 교수로 세워지는가는 학교와 교단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모교에서 탁월한 분이 섬기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찼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교단과 한국 교회에 미칠 영향력이 너무나 기대가 되고 행복했습니다. 

이교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적어도 제 마음에 감출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북클럽에 대한 저의 비전, 그리고 이후의 사역의 방향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정말 좋았던 것은,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교수님이 ThM 수업을 이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북클럽 셋팅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깊이 있는 학습의 장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마음에도 저의 마음처럼 ’진정한 배움‘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습니다. 배움은 단순히 지식 몇줄을 더 이해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 안에서 통합적으로 그리고 내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서로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저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을에 책이 나오면 꼭 학교에서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천서도 부탁하였습니다. 저의 생각과 비전을 이해하고 함께 마음에 품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교수님의 발전된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4년전에 만났을 때 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더 깊어졌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본인이 주장하고 가르치고 설명하는 통합적인 배움을 스스로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계속적으로 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으로 기쁨이 가득해지고 또 마음이 풍성해 졌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유스 교육을 전공한 교수님의 입장에서, 저의 미래 목회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본인의 고민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세상의 유일한 목표는 ’자아실현‘이며 심지어 크리스천 조차 그것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만들어 줄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공동체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의 부모는 자녀를 어딘가에 ‘맡기는’ 존재에 불과하며 바로 그 사실이 자신은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회의 근본에서는 결혼의 회복, 그리고 가정의 회복이 최 우선에 놓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실천적인 방법으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복음적인 내용이 들어간 책을 매일 밤 아주 짧게라도 읽어주는 것을 추천했습니다.  

저는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이 모든 것이 북클럽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도 저와 완전히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북클럽은 단순히 지적인 부분을 채우는 교육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이교수님의 용어를 빌리자면, thinker, feeler, doer를 모두 만족시키는 가장 탁월한 복합적인 교육 방식입니다. 

또한 북클럽이야 말로, 공동체 안에서 복음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기반한 배움의 장입니다. 더 나아가서 가정을 살리기 위하여 부모를 양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부모를 성숙하게 만들 때에야 가정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북클럽은 한국 교회에 있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영역입니다. 

자신이 최근에 가장 좋게 읽고 있는 몇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책 이야기를 할 때 교수님의 그 뜨거움이 좋았습니다. 서사의 위기, 사물의 소멸, 피로 사회, 경이라는 세계, 복음 집 열쇠, 뜻밖의 회심 등 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북클럽과 연결된다고 확신있게 이야기해줄 때에 제 마음에 감격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교수님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그 본질을 만지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단계에 올랐음을 보았기 땜문입니다. 

이교수님은 저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후반부 그리고 내년까지 걸쳐서 읽을 책들이 정해졌습니다. 다시 연락을 나누고 교제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비록 또 잠시 헤어지지만 우리의 꿈과 하나된 마음은 계속 될 것입니다. 

존 파이퍼의 SolidJoys 묵상 (1) - As Sure as God’s Love for His Son & the logic of heaven

 

과거의 저는, 어려운 것만 찾았습니다. 물론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유익합니다. 아주 고된 생각의 몸부림을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짧지만 깊은 글 속에서 영원한 기쁨을 맛봅니다. 아주 탁월하게 쓰여진 몇 문단의 글만으로도 마음이 온전히 새로워집니다. 

그런 면에서 존파이퍼 목사님의 Solid Joys는 제 자신을 위한 그리고 성도님들을 위한 최고의 자료입니다. 중요한 것은 깊이입니다. 한 단어 한 문장이 깊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Solid Joys 팟 캐스트는 존 파이퍼 목사님이 직접 읽어주셨습니다. 본인의 글을 가장 잘 아는 저자가, 자신의 진심을 담아서 읽어주는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새벽길을 걸으면서 들었습니다. 로마서 8장 23절 말씀을 기반으로 한 내용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 말씀을 ‘the logic of heaven’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기반하여서 우리의 삶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사용하실 것이라는 감격적인 내용입니다. 

저는 ‘the logic of heaven’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세속적인 것으로 가득합니다. 사실상 병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논리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온전히 새로운 성경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기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지나간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또 앞으로 닥쳐올 많은 일들을 가늠해보면서 ‘the logic of heaven’를 마음에 새겨 넣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저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가장 완전하게 일하시고 계시며 또 일하실 것입니다. 또한 저 뿐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그분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꺼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길은, 걸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좋아하는 목사님을 만나기 위해서 아주 이른 시간 길을 나섰습니다. 혹시 아내와 아이들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새벽은 생각보다 공기가 찹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없는 시간입니다. 다행히 SRT 역까지 멀지 않아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한시간의 거리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 차로 여러번 다녔던 길인데 많이 새롭습니다. 사실상 전혀 다른 길 처럼 느껴집니다. 길가에 나무들이 보이고, 하늘이 보입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걷고 있는 그 길과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열심히 걸으면서 신앙을 생각했습니다. 신앙도 마치 그런 것과 같습니다. 내가 직접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한번에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남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작은 걸음들을 차분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옮기는 것이 우리의 성도의 삶입니다. 

저는 저의 길을 진실하게 걷고 싶습니다. 그 길을 실제로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걸어보지도 않은 것을 마치 해본 것처럼 그럴 듯 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기쁘고, 또 때로는 아름다운 그 신앙의 길을 힘써 걸어가면서 성도님들을 섬기고 싶습니다.

한참을 걸어서 역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안심이 됩니다. 혹시 기차 시간을 놓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그리고 시간을 생각하며 조바심을 낸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걷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은 좀 고단하지만, 마음이 밝아지는 아침입니다. 

글을 쓰는 행복, 영원한 기쁨

 

젊은 시절을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것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글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잠깐 커피숍에 들어왔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당역의 길거리 밖은 약간 선선합니다. 너무나 산뜻한 한국의 봄 날 저녁입니다. 저의 마음은 행복하고, 또 인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더욱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극치 속에 들어가 있는 듯 합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이 순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평생 몇번 누려보지 못할 이 기쁨을, 기록으로 남겨 둡니다. 

길을 제시하는 사람을 만나다 with 한철호 선교사님

 


저는 항상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어른은 ‘길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길을 제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시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탁월한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삶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실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번에 갖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드문일입니다. 

약속의 교회 강진성 목사님과 교제할 때에 한철호 선교사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미션 파트너스 대표로 섬기고 계시고 한국 교회의 선교 사역에 큰 축을 담당하고 계시는 귀한 분이십니다. 본인에게 멘토와 같은 분이고 분명히 저에게 유익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선교사님과 저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병원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시간을 내주셔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먼길을 오셨고 또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을 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공부한 것들, 북클럽에 대한 이야기들,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좋았던 것은, 선교사님의 진실함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가득찬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열정이 존경스러웠습니다. 후배를 위해서 또 저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귀한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나눠주셨습니다. 특별히 선교사의 입장에서 한국 교회의 미래에 대해 본인이 생각하는 것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북클에 관해서는 ‘C.S.루이스의 길’을 따라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서 성경으로 다가가는 것처럼 Books에서 궁극적으로 The Book으로 나가야 하는데, 자칫하면 북클럽을 하면서 책 자체에만 빠져서 성경을 소홀히 하거나 혹은 성경의 가치를 깨닫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둘째로, ‘이원론’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워주셨습니다 현재 우리의 교회 우리의 교육이라는 것은 서구권의 개념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지식을 세분화시키면서 합리성 자체를 갖추는 것을 마치 성도의 궁극적인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동양적인 통합의 사고이며 그것을 충분히 발휘해야 깊이 뿌리 박힌 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양적인 통합 사고를 위해서, 서양인의 사고가 아닌 한국인의 맥락에서 우리에게 맞는 내용과 교제를 만들기 위해서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결국 인식론의 문제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Books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성경까지 연결하는 통합적인 사고를 꾸준히 훈련하고, 다양한 책을 읽을 때에 궁극적으로 성경을 향해 사람들을 이끌어 가라고 정말 진지하게 조언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에 ‘새로운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하셨습니다. 개신교회가 복음을 붙들고 카톨릭으로 부터 나온 것처럼, 지금의 개신 교회 안에서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선교의 역사 속에서 변두리에서 어떤 운동이 항상 일어났던 것처럼, 현재의 교회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마도 그것은 조직 교회가 형성 되기 전의 아주 초기의 초대 교회로의 회복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넷째로, ‘사역의 영역’을 정해서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본인 역시 광야의 시간이 길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너무 의미가 있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광야의 시간을 버텼기 때문에 지금의 본인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후배 목회자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광야의 사역에서 지역 교회 형태로 사역을 전환할 때에, 그것 자체는 좋지만 두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만류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 교회 목회자로서 성도를 섬기고 심방하고 설교하는 것에 집중하든지, 아니면 한국 교회를 섬기는 역할을 위해서 단체로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로 꼭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선교는 벽을 넘는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단순히 어디를 가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벽을 넘는 것 자체가 선교임을 강조하셨습니다. 한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고 살아가는데, 그것을 깨트리는 작업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의 진심어린 조언들을 들으면서,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았습니다. 충분히 이원론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제 안에 복음과 세상을 연결하지 못하고 그것을 둘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태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감사한 것은, 리딩피플 북클럽을 섬기면서 그러한 부분을 저도 모르게 많이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의 사역의 범위를 결정하는데에도 큰 유익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지역 교회 목회자입니다. 물론 북클럽 단체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이민 교회와 한국 교회를 섬기겠지만, 그러나 제가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제가 섬기는 지역 교회이며, 오히려 그 지역 교회를 잘 섬기고 양육해서 모델링을 하여서 다른 교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도록 제 사역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북클럽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번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북클럽 안에 들어 있습니다. 선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북클럽 자체가 선교입니다. 사람과 사이의 견고한 벽을 깨는 것이 북클럽이고, 조각난 지식들을 하나로 모아서 통합하는 것이 북클럽이고, 또 우리의 모든 사고를 연결해서 성경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또한 북클럽입니다.

선교사님과 나눈 몇시간이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익히 들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전혀 다른 가장 가치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이성으로는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새로운 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이분처럼 깊어지고 싶다’ 

선교사님께서 귀한 책 몇 권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선교 그리고 초대 교회로의 회복에 대한 책입니다. 읽고 다시 한번 깊이 들어가야겠습니다. 성경과 책을 붙들고 저의 내면 안에서 힘써 씨름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 

2024년 4월 9일 화요일

은사의 귀한 가르침을 마음에 품다 - Remain faith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 (계 2:10)

 


제가 어릴 때에는,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약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년의 저는 이것에 너무나 공감합니다. 누구를 만나는가 그리고 누구의 조언을 듣는가는, 사실상 그 사람의 전부입니다.

11년만에 은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용인의 하늘문 교회를 섬기시는 배영진 목사님이십니다. 영국 유학 후에 청년부 담당으로 저를 돌봐주시고 저는 목사님께 북클럽을 배웠습니다. 

배목사님은 유학시절에 프란시스 쉐퍼가 세운 라브리에서 직접 쉐퍼의 사위와 대화를 나누고 배웠습니다. 그곳은 방식은 일단 멘토를 붙여주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추천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면서 그 책으로 함께 토론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맞춤형 북클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저의 북클럽 정신은 쉐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뵈었지만 참 좋았습니다. 항상 저에게 가르쳐주신 것처럼, 스스로 새롭게 도전하고 훨씬 더 발전하셨습니다. 목회 뿐 아니라 상담사로서 탁월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본인을 바라보는 객관성에 있어서도 훨씬 더 깊어지셨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집중해서 경청했습니다. 평생에 앞으로 몇번 누리지 못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는 저에게 가장 중요한 조언 몇가지를 진심을 다해 전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위선’의 문제입니다. 위선에 빠져 큰 위기에 처한 몇 분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큰 슬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들으면서 섬뜩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만약 목회자가 이중성에 빠지면 스스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 개인의 ‘하나님과의 친밀함’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설 때 만이 변화의 실마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나누는 시간이 앞서야 한다고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을 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카톡 프로필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영어로 풀어서 다시 한번 설명해 주셨습니다. "even to the point of death" 죽는 순간까지 그 지점까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역의 크기가 아니며, 신실하게 순종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실함에 목적을 두고 목회해야 은퇴 이후에도 허탈함에 빠지지 않는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두가지 말씀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확고하게 저의 방향을 잡아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항상 저의 설교의 첫번째 대상이 제 자신입니다. 그러니 부족함을 크게 느껴 개인 큐티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아주 좋은 선택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가끔씩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런데 반드시 이렇게까지 해야함을 마음에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신실함 역시 제가 최근에 더 깊이 생각하는 부분이기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점점 더 제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 붙이시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하시고, 이제 내가 죽는구나 라는 탄식을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황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저는 무조건 신실해야 한다고 하루에도 수십번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야 말로, 제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신했습니다. 

세월은 흘러 이제 목사님의 은퇴도 7년 남짓 남았습니다. 헤어지는데 마음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한달에 한번이라도 찾아뵙고 하면 참 좋을텐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너무 멀리 보내셨습니다. 

헤어질 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덕분에 제가 이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동안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제 진심으로 고백이었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제가 다시 목사님을 뵐 때에 더 자랑스러운 모습이 되고 싶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대로 신실하게 목회했고 또 그래서 귀한 열매들이 있었다고 나누고 싶습니다. 그날까지 다시 한번 달려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2024년 4월 8일 월요일

제1회 '로고스와 설교 포럼'을 마치고 - 우리는 같은 길을 간다

 


한국에 와서 여러 일정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하던 일정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로고스 프로그램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저의 모교와 같은 열린비전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그곳이 목사님들께서 부탁하셨습니다. 

사실 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에게 있어서 뭔가 더 배우고 발전하겠다라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목회지는 학교가 아닙니다. 정말 녹녹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막상 목회 속으로 들어가면 무엇인가 더 배워서 자신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그저 현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부탁하시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정을 맞춰보니 밤 시간만 가능했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 분이 이미 하신 설교 본문을 가지고, 제가 마치 설교를 준비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로고스를 이용해서 준비한 이후에 비교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모임의 이름도 지었습니다. '로고스와 설교 포럼' 입니다. 

사실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여행 중에 틈을 내서 설교를 들어보고 로고스를 띄워서 자료들을 살피면서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잠깐 통화를 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이제 너는 나눌 때가 되었다, 배우고 익힌 것 아끼지 말고 나누거라'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피곤한 중에 밤에 찾아뵈었습니다. 목사님들은 저보다 더 피곤한 얼굴로 저를 맞이하셨습니다. 서로 피곤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참 좋았습니다. 적어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교회를 더 잘 섬기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하시는 분들도 그리고 제 자신도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저를 부르셨는지 먼저 여쭤보았습니다. 목사님들의 목표는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설교를 위해서 로고스를 잘 사용하는 것이고, 또 로고스에 계속적으로 자료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준비한대로 잘 말씀드리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의 성경 주해 단계부터 스터디 바이블의 효율적인 사용과 필요한 자료 추천, 그리고 원어 검색과 사전의 사용 그리고 주석들까지 연결해서 설명 드렸습니다. 

단 한번의 모임이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고민했던 것들, 그리고 블로그 안에서 정리했던 것들을 활용해서 두시간 정도의 시간을 강의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자료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에 필요한 자료를 우선 구입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자료의 특성을 파악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앵커 기능을 통해서 나만의 해석과 통찰들을 계속 모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순환을 타면서 성경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설교에 능숙해질 수 있다고 설명드렸습니다.

늦은 밤이었지만 그 나눔이 참 좋았습니다. 들으신 분들도 좋아하셨지만 사실 제 마음이 가장 기뻤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분들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버스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시간이, 마치 저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제 마음에 한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설교학 전공은 아니지만 목회자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본인의 설교를 더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분들과 함께, 설교를 깊이 연구하고 자료를 추천하고 공유하고 피드백을 나누면서 목회에 유익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생각지도 못하게, 하나님께서 그 첫 걸음을 내딛게 하셨습니다.

제 블로그에 다양한 분들이 방문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목회자들 중에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댓글로 혹은 제 이메일 jungjinbu@gmail.com 으로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됩니다. 특별히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 로고스를 사용하기 위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의 능력 안에서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인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청년 시절 유년부 교사를 할 때에, 저의 장인 어른께서 부장 집사님이셨습니다. 물론 제가 아내와 교제하기 전입니다. 한창 잠이 많은 저는주일 아침 교사 모임에 종종 늦었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장인 어른께서 항상 격려해주셨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피곤하지 않냐고 도리어 마음을 위로해주셨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것이 당연히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지만, 장인 어른을 만난 것이 제 인생에 큰 위로입니다. 저는 장인 어른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고생한 것을 깊이 알아주시고, 또 목회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고 계시고 항상 격려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가족 사진을 찍었습니다. 언제 다시 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사진은 결혼식 이후에 처음 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서 사진을 다 찍었는데 사진사께서 물어보십니다. '혹시 더 찍고 싶은 사진 있으세요?'

용기를 내서 아버님과 한번 찍겠다고 했습니다. 아버님 옆에 나란히 서서 찍는데 마음이 벅찹니다. 눈물을 참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발을 디딘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기적입니다. 만약에 장인 어른께서 격려해주시지 않았다면, 또 힘을 주시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이십년 전에 처음 뵈었기 때문에 이제는 아버님도 많이 늙으셨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 모습이 그대로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인자한 모습으로 미소로 격려해주시던 그 모습입니다. 혹시 제가 울까봐 직접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글로 남깁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 저를 인내해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소중한 손자들

 

아버지께서 선장으로 일하시면서 제 어린 시절은 어머니 밑에서 거의 자랐습니다. 이제 철이 조금 들어 아버지와 지내는 것이 좋아질 무렵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 곧 유학을 나왔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선택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과 이렇게도 오래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언제나 마음에 큰 아쉬움으로 있습니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손자들이 만났습니다. 날이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작은 농장에 올라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행복의 순간은 참 짧지만, 영원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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