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율법을 그의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시겠다는 약속을 포함합니다. 이는 돌판에 기록된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옛 언약과
대조됩니다. 새 언약은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신명기 30장은 이미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옛 언약이 결국
저주와 포로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그 후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실 것(신명기 30:6)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통해 시작되었으며, 옛 언약의 목적을 성취합니다.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을 알게 되며, 그리스도께 반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는 용서받고 우리의 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습니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영접송이라는 제목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는 간절한 고백을 담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종교적인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밖에서 그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누구든지 그분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그분의 은혜를 입고 그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에서부터 약속하신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그분의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두시고, 그들이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법을
따르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결단은, 지금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성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자신의 마음을 언제나 활짝 여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심을 언제나 의식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성도의 인생이란,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죄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더라도, 그분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에 풍성하게 드러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기뻐하면서 더욱
그분과의 친밀함을 깊이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이 찬양은, 아이자야씩스티원 찬양팀의 곡이다. 이 곡은, 하나님의 은혜의 충분함과 놀라움에 대해서 깊은 고백을 담아낸 곡이다. 죽은
영혼을 살리시며 성도의 연약함을 뛰어넘게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라는 말씀은, 거짓 성경 교사들과 고린도 성도들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반영하기 때문에, 고린도후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내용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에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자신의 약함이나 고난이나 고통을 피하거나
탈출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능력’은 그러한 시련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어려운 시기 가운데에서도 성도가 사랑을 베풀며,
세상을 치유하며 섬기는 신실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엡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은혜로 너희가 구원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오직 은혜(sola gratia)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긍휼과 사랑에서 비롯되며, 우리
안에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의 어떤 좋은 결정이나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초자연적인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704–1705.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죄에 대한
심판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본보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대신하여 사랑하는 아들에게 진노를 쏟으셨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라는
표현은 신약 전체에서 절반 이상을 요한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항상 이 단어를 그리스도를 가리켜 사용하며, 성부와의 독특한 관계, 그분의
선재성, 그리고 피조물과의 구별됨을 드러냅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함, 곧 그분이 단 하나뿐인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분이야말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에 보내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시며, 그를 통해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의 절대성에 대해서 탁월하게 드러낸 곡이다. 성도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두 영혼이 죽었던 이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며 그분을
믿게 하시며 다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평생동안 지속된다. 우리는 한 없이 연약한 존재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능력을 베푸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이며,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를 붙드시며 인도해 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깊이 묵상하기를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함 그분의 독보적인
가치를 이해하고 붙들면서, 고된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전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 삶을 채우고 끝없는 고난에 주저앉고
싶을 때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네
내 믿음의 고백과
내 감사의 이유가 나 가진 것 상황에
있지 않으니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주의 손에 있음을
난 믿네
꽃길 아닌 가시밭길
좋은 길 아닌 좁은 길 그럼에도 이 길
끝에 소망이 있기에 (생명이 있기에)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실수가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 주의 선하심을 난
믿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실수가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 주의 완전하심 난
믿네
2. 곡 소개
이 곡은
피아 워십의 ‘Blessed’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비록 고난 속을 걸어가더라도,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살아가겠다는 성도의 진실하고 또 담대한 고백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 145: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의로우시고 인자하시다는 이 두 속성의 결합은 하나님의
성품을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그분의 공정한 판단을 이끌어 내며,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구원의 역사와 용서의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도와 목적에 대한 오류가 없는 통찰에 따라 보존하시기도 하고 멸하시기도 하십니다.
시 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반석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안정성과 영원성을 나타내며, 강조를 위해 구절의 맨 앞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표현들은
이스라엘의 반석 되시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것은 이 노래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며, 변덕스러운 백성과는 대조되는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다. 모든
성도는 반드시 고난의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낙심하고 신앙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 찬양은, 이러한 성도의
현실을 정직하게 드러내면서 마음을 위로해준다.
이 찬양은, 이러한 성도의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 찬양의 고백처럼, 그리고 진리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또한
은혜로우시다. 그분은 실수가 없으시며 완전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의 고난을 넘어서 나중에 받게 될 영광과 상급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운 것이다.
특별히 고난 주간을 지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구원을 이루어 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반드시 드러내실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인 신앙으로, 그리고 확고한 믿음으로 용기 가운데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볼티모어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그 이유는, 끊임없이 교회의 본질을 붙들고 그것을 향해서 추구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님들 모두가 이러한 성경적 교회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담임 목사로서 처음 맞이하는 선교의 달, 그리고 선교 부흥회는 의미가 컸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분위기에 저도 동참하면서, 한달동안 집중적으로 복음 전파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휄로십 교회의 김대영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의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김목사님의 세번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하시고 열정적으로 섬기신 시간들, 그리고 주님께서 목사님의 생명을 구하시고 계속적으로 복음으로 교회를 섬기게 하시는 모든 간증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예수님을 듣지 못한 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 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해 주신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강력한 선포가 좋았습니다. 김대영 목사님과 조금만 대화를 해보아도,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된 분인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부터 느껴지는 목사님의 진심으로 참 좋았고, 그러한 진실함이 설교 가운데 묻어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합리성을 붙들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믿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뛰어 넘어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신 것은, 목사님의 지나온 진실한 삶과 겹치는 능력 있는 말씀의 선포였습니다.
결정적으로 도전이 된 것은, "우리 모두가 선교사이다" 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일상에 눌려서 살아가는 이민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서, 선교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성도 모두에게 주어진 것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선교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명의 선언을 통해서 성도님들도 마음에 은혜를 많이 받으셨지만, 저에게도 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도전이 되었습니다.
부흥회를 통해서 실질적인 전략도 제시해주셨는데, 그것은 로컬 처치로서 가지는 볼티모어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해주신 부분입니다. 선교를 먼 거리에 있는 곳만 하려하지 말고, 바로 이 지역 사회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감당하라고 강조하셨고, 저 역시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볼티모어교회를 바로 이 지역에 세우셨고, 분명히 주님의 뜻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말씀과 연결된 지혜로운 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야 함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교 부흥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귀한 부흥회 그리고 선교의 달이 은혜 가운데 마치게 되어 또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러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볼티모어교회를 주님의 뜻을 힘있게 추구해 나가는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나가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Baltimore Church is a truly wonderful church. The reason is that it continuously holds on to the essence of the church and pursues it faithfully. I am always thankful that all the members dream of this kind of biblical church.
This was my first Mission Month and Mission Revival as the senior pastor, and it was very meaningful. I was able to join in the spiritual atmosphere of the church and spend a month deeply reflecting on and sharing the message of the gospel.
I’m especially thankful that we had the precious time of the revival with Pastor Daeyoung Kim from Fellowship Church.
Listening to Pastor Kim’s three sermons, I felt my heart burning. His devotion as a missionary, his passionate ministry, and his testimonies of how the Lord saved his life and continues to use him to serve the church with the gospel were deeply touching.
What stood out especially was his clear definition of the purpose of a believer’s life: “To reconcile the countless people who have not heard of Jesus with God.”
His strong declaration that we must become people who offer ourselves to God was also powerful. Even a short conversation with Pastor Kim revealed his deep devotion to God. His sincerity could be felt from the heart, and that sincerity flowed through his preaching.
Many people hold on to their own reasoning, but Pastor Kim emphasized that in the end, we must trust God, go beyond our own thoughts in faith, and become those who offer ourselves wholly to Him. His words were powerful because they reflected his true life journey.
What challenged me the most was his declaration: “We are all missionaries.” To the members of the immigrant church who are burdened by daily life, he proclaimed that missions is not a task given only to certain people, but a calling given to every believer. Through this declaration of mission, many members were touched by grace, and it also challenged me to newly establish my own identity.
Pastor Kim also presented a practical strategy during the revival, emphasizing the role of Baltimore Church as a local church. He encouraged us not to focus only on distant mission fields, but to carry out our role of spreading the gospel right here in our local community. I deeply agreed. God established Baltimore Church in this region, and He clearly has a purpose for it. Now I clearly realize that we must develop a wise strategy connected to this message and put it into practice.
I give thanks to God for allowing this Mission Revival. I am also grateful that both the precious revival and Mission Month ended with much grace. Just as God has done so far, I sincerely pray that He will continue to build Baltimore Church into a beautiful church that boldly pursues His will.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지만, 하나님께서 더 특별히 인도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에게는 지난 반년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볼티모어로 인도하셨고, 이제 6개월이 지났습니다.
전화 통화 중에 어떤 분이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목사님, 이제 좀 적응이 되 가시죠?" 사실 저는 이 대화를 나눌 때에도 이곳에서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그분이 민망하실까봐 대답은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예,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보니 여전히 적응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가 뜨기 전에 교회로 오고, 해가 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제서야 약간 적응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한 주에 다섯편 정도를 해야 하고 또 가능한대로 심방을 해야하는 것도 이제서야 약간 적응이 되었습니다. 제 자신만 살피지 않고 가족들을 살피고 돌보는 것도 이제서야 약간 적응이 되었습니다. 제가 볼티모어 교회 담임 목사라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책임이 정말 크다는 것도 이제서야 아주 약간 적응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아직 충분히 적응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내는 웃으면서 이야기하더군요, "담임 목회 한 6년 한 사람 같아" 칭찬해 주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속으로는 여전히 낯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것을 지나치게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감당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고, 새로운 각오로 감당하고, 실패해도 넘어지는 것이 저의 인생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중첩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내를 처음 만난 스무살 중반의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의 생활과 사역과 고단했던 시간들과 행복했던 모든 것들이 마치 얇은 종이들이 겹치는 것처럼 하나로 겹쳐 보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보이고, 이렇게 쌓여가는 저의 인생 자체가 낯설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인생 자체가 아직도 적응 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두주 정도 전에 심하게 아팠습니다. 아마 미국에 와서 두번째로 심하게 아픈 듯 합니다. 최대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지나친 스케쥴과 과로로 인해서 거의 이틀동안 누워만 있었습니다. 지나간 반년의 피로와 부담스러웠던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번 심하게 아픈 이후에는, 건강에 대해서 더 조심스럽습니다. 아직도 회복중이고 최고의 몸과 영적인 상태로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서른 초반에는, 정말 위대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작은 인생에 자랑할 것도 없고, 그리고 자랑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랑은 정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저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오히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맡겨진 일에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이제 나를 드러내는 필요 없는 말을 적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격려하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 방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볼티모어 교회 담임 목사 위임패와 위임 예배 기념 컵을 놓아 두었습니다. 항상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야 하는 역할과,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흔들리고 헷갈리고 가끔은 엉뚱한 길을 걸어가지만, 그래도 제가 걸어가야 하는 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볼티모어에서의 반년은 정말 바빴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시느냐"라는 짧은 질문에 다 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폭풍처럼 닥쳐오는 일들을 감당하고 또 그 안에서 성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연히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저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지혜롭게 저를 도와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저에게 힘과 격려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가족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신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임을 계속 깨닫게 됩니다. 마치 몇년을 압축한 것 같은 반년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에게는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저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저 믿음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데 최선을 다하기 원하고, 그 안에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작은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
이 찬양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사랑, 기쁨,
위로, 그리고 축복을 받는 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하는 곡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며, 그
안에서 성도 개개인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렙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영원한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은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의 대다수가 그 사랑을 거절하더라도 이 언약적, 관계적 사랑은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428.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기뻐하시고, 그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안식하시며, 그들에 대해 기뻐 노래하시는
것은 불가해하지만 귀중한 진리이며,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반응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313.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종종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겪게 하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체험적으로 사역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위로를 베풀 때, 당신은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며, 당신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실체의 더 깊은 차원을 경험하도록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 구절은 종종 ‘송영(doxology)’이라
불리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열거하며 그분께 경배와 찬양, 영광을
돌리는 표현입니다. 이 장엄한 부분에서 바울은 교회가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누리는 복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이 복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은 신분, 양자됨, 구속, 선택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모든 영적 은사와 섬김의 능력도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께서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이 영적 복에서 흘러나옵니다.
David S. Dockery, “Ephesians,” in CSB Study Bible: Notes, ed. Edwin A. Blum and Trevin Wax
(Nashville, TN: Holman Bible Publishers, 2017), 187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계시고 어떤 은혜를 부어주시는가를 깊이 깨닫게 하는 곡이다. 굉장히 단순한 가사이지만, 성경적으로 깊은 은혜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사랑 속에서 성도를 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를 너무나 기뻐하시며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는 것처럼 기쁨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신다. 우리의
고난과 어려움을 모른 척 하시지 않으시고 깊이 위로하시며, 또한 그 위로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늘의 복을 누린다. 우리는 주님의 선택 속에서 구속을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모든 능력과 세상을 살아갈 힘을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때로는
세상의 기준과 판단 속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이 찬양을 부를 때에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깊은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회복되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디지털 도메인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굳이 아날로그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아웃보드 없이 그저 플러그인으로만 믹싱하는 저에게는, 아날로그는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로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필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 채널 스트립은 아날로그를 그대로 복각했고 유명한 뮤지션이 사용했던 믹서이다 라고 하니 구입을 안 할 재간이 없습니다. :)
구입하고 보니 알게 된 것은,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 의 구버전은 인터넷에서 거의 사기에 가깝다고 굉장히 비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날로그를 복각했다고 하지만 실제 믹서의 특징등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야 기술적인 부분은 모르지만 이큐 쪽이 사실은 디지털 이큐의 특성과 동일했기 때문에 한동안 핫 이슈였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구입한 것은 논란이 있었던 구 버전 이후에 SSL에서 새롭게 출시한 뉴버전입니다.
아마 원래 가격인 300불이면 절대로 구입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기습적으로 할인을 해서 결국 30불에 구매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때 구입하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구입하기 전에 데모 버전을 먼저 사용해 보았는데 제가 좋았던 점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로는, 프리앰프 섹션에 DRIVE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세츄레이션 플러그인들이 많이 있지만 채널 스트립 안에서 바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츄레이션 느낌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분명히 걸리는데 걸리는 것 같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있었습니다. 항상 어떤 사운드의 매직을 바라는데, 기분 좋게 왜곡이 올라오는 그런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둘째로, 컴프레서가 세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LEVEL은 옵토컴프레서처럼 부드럽게 걸리기 때문에 보컬이나 부드러운 악기에 쓰기 좋아 보였습니다. 물론 다른 컴프를 사용해도 되지만, 이것도 안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좋았습니다. 실제로 걸어보면 병렬로 퍼센트를 넣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색하지 않게 부드럽게 소리를 잡아 주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셋째로, 이큐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로우패스, 하이패스 필터가 정말 좋았습니다. 이큐 자체로만 보면 큐값을 조절하지 못하게 때문에 굉장히 자유도가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큐를 만져보면, 정말 부드럽습니다. 디지털로 표시가 안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큐 값이 걸리는지 어느 정도 컷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놉을 만져서 소리를 들어보면 굉장히 부드럽고 기본 좋게 사운드가 바뀝니다.
*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 필터가 정말 부드럽다
특히 필터가 정말 부드럽습니다. 플러그인 얼라이언스 기준으로 SSL 4000E나 G는 너무 급격하고 특성이 있어서 아무리 만져도 다루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SSL 9000J 도 좋았고, AMEK 9099도 이큐 섹션은 훨씬 다루기 좋았지만, 필터는 크게 좋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운드가 너무 답답해서 로우컷을 하면 뭔가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았고, 하이컷을 하면 너무 사운드가 급격하게 잘려나간다고 느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래서 오히려 더 추가적인 이큐를 무리해서 사용한 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는 이큐의 섹션은 많지 않지만, 조절해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완만하게 변화가 되면서 기분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특히 제 목소리에서 로우컷을 걸면 아주 부드럽게 저음을 컷해줍니다. 지금까지 로우컷한 사운드 중에서 독보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필요한 부분에서는 하이컷도 아주 부드럽게 사운드를 바꿉니다. 채널스트립 사용하면서 이렇게 즐겁게 필터를 쓴 것은 처음입니다.
*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 로만 채널을 구성해보자
귀는 언제나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순전히 저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구입하고 나서 적어도 제 기준에서는 각 채널에는 메인으로는 이제 이것만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처음으로 커버곡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곡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라는 곡이고, 제가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바꾸었습니다.
위에 보시는 것처럼 프로젝트는 아주 간단합니다. 보컬, 피아노, 바이올린1,2,비올라,첼로,혼,플룻 딱 이런 구성입니다. 모든 채널에는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를 사용했습니다. 사실 큰 셋팅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보컬은 120hz까지 로우컷, 다른 악기들은 기본적으로 100hz 어간입니다. 피아노와 첼로는 좀더 아래로 컷했습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것들은 하이컷을 약간씩 했습니다.
보컬 기준으로는 DynEQ로 레조넌스 세군데 정도를 잡고,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으로 톤을 잡고, 디에서를 걸고 LA-2A로 조금더 힘을 보탰습니다. 그리고 Boz Digital 에서 무료로 받은 Width Knob을 가지고 최대한 모노로 모았습니다.
제가 정말 좋았던 것은, 아예 마음을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만 가능하면 써야지라고 했기 때문인지 추가적으로 다른 플러그인들을 쓰지 않고 아주 심플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만든 제 경험 안에서는 사운드도 좋게 나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채널 스트립 다움에 풀텍이큐 등을 더 넣었겠지만, 최대한 심플하게 그리고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 본연의 느낌만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다른 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오케스트라 악기들은 아무것도 걸지 않고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 하나만 걸었습니다. 심지어 버스로 묶어서 추가적인 것도 안 걸었네요. 그냥 각 채널별로 사운드를 조절했습니다. 악기는 BBC Symphony Orchestra Discover 입니다. 무료 버전에 작은 용량이라 가볍게 쓰기에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제 보니 바이올린에는 컴프를 걸지도 않았네요 :) 기본적으로 이큐는 로우컷을 넣고, 400hz 정도를 살짝 컷한 수준으로 최대한 소리를 유지하면서 부밍한 느낌만 다 뺐습니다.
* 마스터링 체인은 최대한 심플하게
마스터 단에는 AMEK 9099를 THD만 살짝 넣고 통과 시켰습니다. 그리고 SSL 9000도 THD를 살짝 넣고 이큐를 살짝 손보고 통과시켰습니다. 나름 서밍의 느낌을 충분히 주는 것 같아서 최근에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V3이큐에서는 미들 쪽에 5k 정도를 1db 정도만 빼주고 (보컬의 날카로움을 조절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이드쪽에는 100hz 정도까지 저음을 줄이고 센터쪽으로 에너지를 모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최근에 구입한 SSL Fusion 플러그인들을 차례로 걸고 아주 살짝만 세츄레이션들을 넣어 주었습니다. SSL Fusion은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에 모듈 중에서 Stereo Image가 정말 압권입니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공간감을 넣어줍니다. 역시나 과하면 안되니 살짝 넣어주었습니다. 마지막은 Shadow Hills Class A로 살짝만 눌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리미터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The Wall 입니다. 최종 Lufs는 가장 큰 부분이 10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결과물입니다.
* 개인적인 소감 및 결론
오랫동안 홈레코딩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소리는 정말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만족이 크지 않으면 꾸준하게 무엇인가 만드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 정말 마음에 듭니다. 제가 만든 위에 결과물들을 최소 100번 이상은 들었는데, 확실히 사운드가 마음에 듭니다. 기존에는 마음에 드는 사운드를 끌어내기 위해서 지금보다 최소 4개 정도는 각 채널마다 사용했는데, 그 갯수가 훨씬 줄어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더 마음에 듭니다.
플러그인 사이트 링크를 읽어보면 정말 설명이 화려합니다. 물론 제조사가 소개하는 것만큼 콘솔의 그 사운드를 완전히 담아 냈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런 부분은 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버전을 기준으로 이큐 부분에서 아날로그적 왜곡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유투브를 보니, 괜히 구입한 것은 아닌가 라는 후회도 잠깐 들었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제 귀를 의지해서 작업을 해보니,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는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주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악기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곡을 만들었지만 단일 채널스트립을 썼을 때에 이것보다 더 좋은 사운드는 만들어내지 못했었고, 제가 만들어낸 결과물 중에서는 이번에 거의 Top을 만들었습니다. 대략 8시간 정도 작업한 것을 생각하면 저는 이정도면 충분히 만족합니다.
역시나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의 가장 좋은 것은, 사운드의 부드러움입니다. 제가 사용했던 다른 어떤 채널 스트립보다 부드럽게 뭔가 음악적으로 사운드가 변하기 때문에 이큐를 만지는데 즐거움이 있고 결과물이 굉장히 좋습니다. 특히 로우컷을 어느 정도 했을 때에 음악적으로 좋은가를 고민하면서 항상 필터에 고민이 있었는데 귀를 의지하면서 적절한 수준에서 로우컷 하이컷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이득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다른 채널 스트립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마스터링 섹션에서는 서밍 개념으로 다른 채널 스트립 모델 두개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제 작업에는 모든 채널에 Harrison 32Classic Channel Strip를 기본적으로 사용하리라 확신합니다. 가장 부드럽고 또 섬세하게 신뢰하면서 사운드를 조절하고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
그대 폭풍 속을
걷고 있을 때 비바람을 마주해야
할 때 불빛조차 보이지
않아도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두려움 앞에서 하늘을
보아요 외로운 그대여 걱정
마요 꿈꾸는 그 길을
또 걷고 걸어요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2. 곡 소개
이 곡은 2023년에 발매된 예람워십의 “The First to Return”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조차 혼자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신앙의 고백을 담고
있다.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 않지만, 그분의 자녀와
언제나 동행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을 담고 있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이사야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물, 강, 불 그리고 불꽃이라는 것은 수세기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해 온 수 많은 위험을 상징하며, 이러한 위헙은 민족의 최종적인 구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위험 속에서도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의 홍해와 요단강을 통과한 것, 그리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서도 보호받은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히브리서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 이 인용문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어조가 강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헬라어로는 두 개의 부정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내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라는 표현과 유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자들을 위한 영생의 확실성을 표현하기 위해
동일한 기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욥기 23: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23: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현재의 고난이 하나님의 시험임을 인정합니다. 이는 욥기 서두에서 사탄이 욥이 고난을 겪으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던 장면과 연결이 됩니다. 욥은 이 시험이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시험은 욥의 성품을 연단하고, 하나님과의 진정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게 합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Job 23:10.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아주 단순한 가사 속에서
큰 소망을 주는 찬양이다. 하나님이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과연 이 곡을 찬양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또 아주 엄밀하고 전통적인 기준으로 보면 예배에 사용될 수 있는 찬양으로
부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마치
욥기 속에서 욥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으나 그와 항상 함께 하심을 고백한 것처럼, 이 찬양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숨어 계시면서 동시에 그분의 자녀를 위로하고 계신다.
우리가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할 때에 느끼는 것은 외로움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 깊은 외로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하며 궁극적인 위로를 준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감으로써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고독 속으로 들어갔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며 궁극적인 동행 그리고 위로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누구도 혼자 걷지 않는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두려움과 걱정에 눌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나의 길을 인도하시며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빚어내시는 그분의 뜻을 내 삶 속에 성실하게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영적인 위로를
누리고 용기 가운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