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금요일

CGN 하루 20분 공동체성경읽기 장별 요약 - (구02)레위기

1. 레위기의 위치와 목적 

1) 문맥적 위치: 출애굽기 40장(성막 완공 및 봉헌)과 민수기 1장(시내산 행군 준비) 사이의 기록입니다. 

2) 목적: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즉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2. 핵심 주제: 거룩(Holy)

1) 핵심 구절: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2) 의미: 자녀가 부모를 닮듯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을 닮아가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과 교제할 때 얻어집니다. 이 교제의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제사(예배)'입니다. 

3. 레위기의 세 가지 성화 

1) 시간의 성화: 안식일, 월삭, 절기, 안식년, 희년 등을 통해 시간을 구별함. 

2) 공간의 성화: 지성소, 성소, 성막 등 장소를 거룩하게 함. 

3) 사람의 성화: 제사장, 레위인 등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성결한 삶. 


* 2월 1일

5대 제사 중 1~4장 내용 정리

* 레위기 1장: 번제  

1) 방법: 흠 없는 수컷을 모두 태워 드림. 

2) 의미: '속죄'와 전적인 '헌신'을 상징합니다. 

* 레위기 2장: 소제 

1) 방법: 곡식이나 고운 밀가루로 드리는 피 없는 제사. 

2) 의미: 변함없는 '충성'과 '헌신'을 뜻하며, 제물의 일부는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 레위기 3장: 화목제 

1) 방법: 자원하여 드리는 감사 제사. 

2) 의미: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이웃과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교제'와 '감사'를 표현합니다. (서원제, 감사제 포함) 

* 레위기 4장: 속죄제

1) 방법: 죄를 깨달았을 때 흠 없는 동물을 드림. 

2) 특징: 계층(제사장, 회중, 족장, 평민)이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제물을 달리하여, 누구든지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 2월 2일 

* 기초 이해: 제사를 드리는 4가지 방식

제물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방법론적인 구분입니다. 각 제사의 성격에 따라 혼합되어 사용됩니다.

1) 화제: 제물을 불에 태워 향기를 올려드리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2) 요제: 제물을 앞뒤로 흔들어 드리는 방식입니다. 

3) 거제: 제물을 높이 들어 올렸다 내리는 방식입니다. 

4) 전제: 포도주나 기름 등 액체를 제물 위에 부어 드리는 방식입니다.

* 레위기 5장: 속죄제와 속건제

1) 속죄제의 자비 (1-13절): 증언 거부, 부정한 접촉 등 일상의 허물을 다룹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 산비둘기나 고운 가루로도 제사하게 하신 것은 '어떻게든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2) 속건제의 원칙 (14-19절):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 부지중에 범죄했을 때 드립니다. 단순한 후회를 넘어 본래 가치에 5분의 1을 더해 갚는 구체적인 배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열매입니다.

* 레위기 6장: 제사장의 직무와 제단 불의 관리

1) 이웃에 대한 책임 (1-7절): 이웃의 물건을 속이거나 착취했을 때, 본래 물건에 5분의 1을 더해 배상 한 후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2) 제단 불의 유지 (8-13절): 번제단 위의 불은 절대로 꺼지지 않도록 제사장이 밤낮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3) 제사장의 예법 (14-30절): 소제물 중 제사장의 몫과, 속죄제물 중 거룩하게 처리해야 할 규례를 상세히 다룹니다.

* 레위기 7장: 화목제의 나눔과 제사장의 분깃

1) 제물의 처리 (1-10절): 속건제 제물을 먹는 법과 번제물의 가죽을 갖는 법 등 사역자의 분깃에 대한 규례입니다.

2) 화목제의 공동체성 (11-21절): 감사제물은 드리는 당일에 다 먹어 신속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서원/자원 제물은 이튿날까지). 이는 사랑의 나눔을 미루지 않는 공동체 정신입니다.

3) 금기 사항 (22-27절): 하나님의 몫인 기름과 생명의 상징인 피는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4) 제사장의 영원한 소득 (28-38절): 화목제물 중 가슴은 요제로, 오른쪽 뒷다리는 거제로 드려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하셨습니다.

5) 규례의 공포와 기원 (37-38절): 1장부터 7장까지 열거된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위임식, 화목제의 모든 규례는 시내 산에서 명령하신 하나님의 법임을 선포합니다.

* 제사 제도의 신학적 의미와 적용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 이 복잡한 제사 제도와 방식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완성하셨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 복잡한 절차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이 큰 은혜입니다.

2)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다양한 제사 규례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 CGN 하루 20분 공동체성경읽기 장별 요약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6/01/cgn-20.html

2026년 1월 29일 목요일

2026 다보스 포럼 An Honest Conversation on AI and Humanity (유발 하라리) -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써의 인간으로 살아가겠다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 중에 하나는 AI 입니다. 영어 회화 훈련을 위해서 ChatGPT 초창기부터 사용했고, 다양한 AI를 삶에서 또 목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 생활에서 낯선 상황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저는 AI를 사용하던 처음부터, 도저히 이 도구의 존재 자체를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인간의 언어의 맥락을 대량으로 학습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탁월하게 될 수 있는 것인가? 

수백 시간을 대화하면서 나의 대화 상대인 AI가 인격체라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습니다. 인간의 뇌를 모방하여서 언어를 학습하여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참 놀랍고, 또 AI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있었던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의 발표를 보았습니다. 제목은 'An Honest Conversation on AI and Humanity ' 입니다. AI를 분석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영상을 보았지만, 이 영상이 가장 깊이 있고 또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인간의 힘은 궁극적으로 언어에서 나온다는 것을 설득적으로 설명하고, AI가 그 영역을 이미 침범하였으며, 이제 곧 AI가 인간을 앞서 나갈 때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제가 이해할 때에 유발 하라리는, AI의 등장 자체가 결국 인간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인간의 인간됨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책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AI는 성경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고 그런 면에서 AI가 성경의 가장 큰 권위자가 되어 종교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AI에게 성경에 대한 내용을 물어보고 있고, 또 Logos와 같은 회사도 신학에 특화된 AI를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보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발 하라리가 지적하고 싶은 핵심은, AI와 인간의 차별점이 무엇인가 였습니다. AI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과 글을 쓰기 때문에, 그것이 겉보기에는 인간의 사고와 다른 점이 없다고 유발 하라리는 지적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나는 누구인가? 혹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종착됩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로 인간의 탁월함을 증명하고 역사를 바꾸었지만, 이제는 그 명제가 깨어질 때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저는 유발 하라리의 인간에 대한 관점 자체가, 심각하게 '도구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능력, 글 쓰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를 가지고 인간을 정의하는 것이며, 그러한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보면, 저는 이것 역시 도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이 인간을 인간되게 만든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유발 하라리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 것입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성경만이 이러한 허무주의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결코 다른 존재와 비교하기 위해서 혹은 도구적 가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우리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하고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기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어떤 도구적 기능을 가졌기에 존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존중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AI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닮았지만, 그러나 결코 인간과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AI가 인간의 생각과 비슷한 것을 완벽하게 혹은 더 탁월하게 보여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AI는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AI는 인간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AI가 보편화된, 혹은 더 나아가서 AI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침범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복음이 진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진리로 믿는 사람만이 혹독한 미래를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AI가 능력과 권력을 가진다 하더라도, 나의 내면에 있는 나의 생각과 믿음에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자체만이 진리임을, 크리스천 각자가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해석 혹은 AI의 해석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AI가 아무리 탁월한 식견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경 그 자체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며, 말씀 자체를 읽고 듣는 것이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복음은 철저하게 내면화 되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기독교의 역설은 객관적이며 동시에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충분히 주관화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AI는 누구보다 탁월하게 보편적이며 추상적인 복음의 내용을 우리에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 복음을 우리 안에 새기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크리스천 북클럽의 역할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어떤 양육 프로그램보다, 북클럽은 복음을 한 사람의 마음 깊이 넣어 줍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나누고 다듬어지는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영혼 안쪽에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닮아가는 사람만이, AI가 만들어낸 정보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인 기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일대일의 교제입니다. 그 사이에는 AI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각자 진실하게 나아감으로써 이 시대 가운데 진정한 인간됨을 경험할 것입니다. 

저는 공예배 가운데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 시간에 함께 기도하며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그 순간은 오직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의 시간이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나의 심령 안에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그분을 함께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AI의 시대 가운데 개인의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가 더욱 중요시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몸으로 진리를 경험하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인간과 AI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은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여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생각과 논리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러한 완성을 우리에게 이미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로고스로 존재하셨지만 실제로 인간이 되심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셨지만 이제는 인간으로서 이 땅에 나타나셨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말과 육신 사이의 긴장만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 완전한 결합을 보고 경험하고 만져 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요즘에 집중하는 것은, 지식의 우상화를 피하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운 점은, 지식을 통해서만 신앙이 성장한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목표가 가장 철저한 수준에서 지식 자체의 습득이라면, 도대체 우리의 길이 AI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기독교 세계관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관을 가르치면 사람이 바뀐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이미 실패한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세계관은 실천과 반복으로 만들어 집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가장 정교한 지식, 심지어 통찰과 지혜를 AI가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우리의 깨달음을 실천하고 우리의 전 존재가 변화되는 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말씀을 따를 것이며 그것이 참된 인간 됨 입니다. 생각과 실제의 삶의 간격을 좁히고 가까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는 것, 그리고 아버지를 닮아가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만 허락하신 일입니다. 

당연히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그리고 충분히 성경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자체가 저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누리는 사랑은 저의 사고의 수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복음을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고 있는가? 

저 역시 한편으로는 앞으로 닥쳐올 세상이 참으로 염려가 되고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AI로 인한 혼란 속에서 오히려 복음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남을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희망이 되는 부분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할 것이며 가장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2026년 1월 28일 수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7) - 새로운 마음


1. 가사 살펴보기

예수 하나님의 아들 말씀으로 오신 주
그 말씀을 믿는 자들마다 새로운 마음 주시네

예수 하나님의 본체 사랑으로 오신 주
그 사랑이 날 찾아오셔서 새로운 마음 주시네

우리의 마음 돌이켜 주의 말씀 앞에 나와
모든 우상들 다 버리고 하나님만 경배하네

새로운 맘 주시고 주님의 성령을 부으사
우리 안에 굳은 마음 제하여 주님의 마음 주소서

그리하여 내 삶이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의 영광 주의 나라 드러나는 삶 되게 하소서


2. 곡 소개

이 곡은, 2016년도에 발매된 아이자야씩스티원의 새로운 마음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새로운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 섬기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아름다운 결단을 담은 탁월한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죄로부터 정결하게 함을 받는 제사 의식은 참된 회개, 그리고 개인의 내면 영혼을 거듭나게 하고 새롭게 힘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단지 물리적으로만 그 땅에 회복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심으로써 영적으로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Eze 36:26–27.

에스겔 14:6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바울이 2장 20-23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한 율법주의에 대한 해결책은 무율법주의나 죄를 지어도 된다는 방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육신의 행실을 죽일 능력이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도록 요구받습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산 자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밖에서의 이전 삶의 악한 행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730–1731.

빌립보서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도의 거듭남은 단순히 외적인 모습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이 바뀌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인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점진적으로 주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가신다. 

우리의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초점을 주님께 맞추기를 원하신다. 이전에는 탐욕에 젖어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나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삶을 드리며 그분의 이름이 높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의 목적인 것이다.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신 주님의 능력과, 우리의 삶의 아름다운 목적을 기억하며 주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6) - 십자가를 참으신


1. 가사 살펴보기

십자가를 참으신 어린양 예수
내 죄 씻어 주시고 구속하셨네

어둠을 물리치신 세상의 빛 예수
영광의 빛 비추사 자유케 하시네

예수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예수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

예수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주 같은 분 없네 주께 영광 돌리세


2. 곡 소개

이 곡은, 어노인팅 찬양팀의 예배인도자 컨퍼런스 2008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분의 진정한 가치를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서 탁월하게 드러낸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히브리서 12: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서 바라보자 라는 것은, ‘신뢰함으로 시선을 고정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인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 앞에 놓여 있는 기쁨에 초점을 맞추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모범이자 모델이 되십니다. 그분의 관심은 십자가의 고뇌가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이었으며, 고통이 아니라 보상이었습니다.

Earl D. Radmacher, Ronald Barclay Allen, and H. Wayne House, The Nelson Study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 Heb 12:2.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시편 29: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고린도전서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복음의 정수를 잘 드러낸 찬양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 상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꺼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셨다. 빛이신 주님께서 기꺼이 어둠 속으로 들어오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신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자격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상식과 기대와 상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시다. 그분은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동시에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우리에게 끝없는 감동과 감격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를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 가운데 깊이 들어가기를 원한다. 또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오직 그분께 한 없는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6년 1월 26일 월요일

마흔 여섯 번째의 생일을 감사하며 / 허망해 보이나 - WELOVE




알고 보면 그의 기억은 그냥 기억일 뿐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책이나 음악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의지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있지 않고 그런 통로로 왔을 뿐이며, 
그 통로로 온 것은 바로 그리움이다. 
아름다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추억은 
우리에게 참된 갈망의 대상이 따로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그림자다. 

-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미국 전역에 겨울 폭풍 경보가 내리고, 볼티모어에도 눈이 많이 왔습니다. 주일에 결국 교회를 클로즈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성도님들을 뵙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주일의 소중함을 너무나 크게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생일을 맞이 했습니다. 사실 오늘이 몇일인지도 깜빡하는 저이기 때문에, 월요일이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생일 카드를 만들어 주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선물을 못 샀다고 현금을 붙여서 선물로 줬습니다. 뭐라고 마음에 표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훌쩍 커서 더 저를 닮아가는 아들을 보는 것이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한 없이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막내 아들은 귀여운 카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막내를 꼭 끌어 안았는데 몸이 참 따뜻했습니다. 

열심히 목회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허망함'이 있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들 뿐이지만, 그러나 저의 근본적인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안을 더 들여다보니, 성도님들과의 헤어짐이 저를 참 아프게 했습니다. 요즘에 그런 생각이 종종 듭니다. '너무 많은 분들과 헤어졌구나' 여러 이유로 이제 이 땅에서 뵙지 못하는 분들을, 돌보고 섬기고 또 천국으로 보내면서 저의 마음의 안쪽이 많이 연약해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이만큼 산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병원에서 생사를 놓고 사투를 벌이는 수 많은 분들이 계신 지금 이 순간에도,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고 가족이 있고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저의 작은 생일을 이제 마무리하며 글을 쓸 수 있어서 그것 또한 감사합니다. 

부모님과 잠깐 통화를 나누었습니다. 멀리 계셨던 아버지 없이 저를 출산하시느라 너무 고생하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여러가지를 걱정하시며 많은 조언을 해주십니다. 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경청하는 것이 저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버지는 옛날 보다 말 수가 줄어드셨습니다. 좀 더 저의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십니다. 걱정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 왠만하면 괜찮다고 말씀드립니다. 요즘에는 전화를 끊기 전에 꼭 말씀드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는, 너무나 쉽게 부서집니다. 삶 자체의 연약함만을 본다면 허무함을 이겨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허망한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며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작은 삶 속에서 펼쳐내십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우리의 삶은 '참된 의미'를 가집니다. 모든 것이 허망해 보여도,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이제 제 인생의 전성기라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오늘 웬지 살짝, 쉽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다시 글을 씁니다. 연약한 제 자신을 보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며 앞을 향해서 다시 걸어가기 원합니다. 내년 이맘 때 즈음에는, 조금 더 믿음이 깊어진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6) - 생명의 빛



1. 가사 살펴보기

말씀으로 세상 지으시고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주
그의 이름을 영접하는 자 자녀 삼으셨네 

천국 약속 소망으로 살고 하늘의 위로를 전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우릴 찾으시네 

어둠속 우리 위해 수치를 참으신 주 생명의 빛 우릴 비추시네
주의 마음 눈물로 이 땅에 씨를 뿌려 생명의 빛 비추게 하소서 

우리


2. 곡 소개

이 곡은 마커스 라이브워십 7집에 수록된 곡으로, 어두운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우리도 이 땅 가운데 주님의 생명의 빛을 비추고 어둠을 밝히겠다는 아름다운 결단을 담고 있는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동시에 안도감을 줍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특별한 은사가 있는 것 또한 오직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목적을 누리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가치 있고 독특한 잠재력을 어떻게 실현하며 살 수 있는지 기쁘게 보여주십니다.

Tyndale, Chronological Life Application Study Bible, ed. Susan Perlman, Second Edition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23), 1289.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이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로 슬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죄와 비참함을 슬퍼하십니다. 죄와 그 결과가 우리를 둘러싸고 그것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도록 유혹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마음의 감정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며,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격려와 힘주시는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Tony Evans, The Tony Evans Study Bible (Nashville, TN: Holman Bible, 2019), 1098.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아무런 소망이 없던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세상은 완전히 어두움에 가득했으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으로 빛이 되어 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하늘의 소망과 위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죄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간구하며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세상 속에서 주님을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도로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십자가를 참으셨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그것처럼 성도의 삶은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성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며, 이 땅에서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늘의 위로로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양을 부르면서, 진정한 성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선행과 섬김이라는 믿음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6년 1월 18일 일요일

나의 설교가, 나의 것이 되기까지 / How Could I Ask for More - Cindy Morgan

 


예전에 한 성도님께서, 제가 아닌 다른 목회자의 설교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정목사님, 이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정말 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참 부러웠습니다. "아니 얼마나 그분의 설교가 감동이 되면 나한테까지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도가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설교 할 수 있을까?"라는 진지한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좋은 설교란 무엇일까요? 혹은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떤 설교가 성도님들에게 감동이 될까요? 아주 어려운 질문이기도하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한때는 주해적으로 정확한 설교가 좋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어와 문맥과 신학적인 논리가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설교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권위있는 주석들을 많이 구입했습니다. 

물론 설교는 당연히 주해적으로 가능하면 정확해야 합니다. 많은 주석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살펴야 합니다. 때로는 아주 난해한 본문 해석을 붙들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에는 성경 본문 그 자체와 목회자 자신의 분명한 신학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드러나야 합니다.  

또 한때는, 성도님들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이 좋은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한 스타일로 말한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당연히 지루해할 것이고 청중의 관심과 설교의 뜨거움은 식어 버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인 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가능하면 연역적으로 내용을 끌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강해와 주제의 두가지 스타일을 함께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다양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마인드맵을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필수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드는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체화된 설교'가 정말 좋은 설교이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만약에 주해적으로 바른 설교가 목표라면, 그냥 주석을 읽어드리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호기심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목표라면, 더 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저는, 아무리 바른 말을 하더라도, 아무리 좋은 구조를 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목회자 자신의 진실한 고백, 확신, 뜨거움이 아니라면 그것이 성도님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결국 문제는, 지역 교회 목회자는 동일한 성도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매주 만나는 동일한 회중이, 담임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기적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목사님, 목사님도 그렇게 못하면서 왜 그렇게 설교하세요?'

그래서 저의 결론은, 설교는 정말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이 직접, 설교 본문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또 설교 원고 자체를 작성하면서도, '도대체 이 본문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가?' 바로 거기에 온 마음을 쏟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의 내용을 설교로 풀어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나의 것이 된 그 말씀'을 설교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주해를 충분히 살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중요한 것은, 저의 내면에 다가오고 그래서 품게 된 본문의 의미와 그 능력입니다.  

또한 '말씀이 나의 것이 되는 그 과정'이 설교의 구조를 만듭니다. 단순히 한절 한절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서 구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감동이 되고 또 마음에 크게 와 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구조를 짭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강해 설교이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주제 설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접근이, 본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어느 정도의 긴장을 만들어내지만, 그러나 설교가 결국 목회자라는 인격체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은 저라는 존재가 설교의 구조에 반영이 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설교를 설교 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에 특히, 설교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계속 고민합니다. 이제는 이 설교가 좋은 설교인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주해적이고 신학적인 정확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정말 이 설교가 나의 진실한 고백인가? 나는 정말 이렇게 살교 있는가? 그리고 이 설교를 내 마음에 거짓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가?' 입니다. 

그러한 질문을 품고 고치고 또 고친 이후에 최종 원고가 완성이 되면, 그제서야 마음이 놓입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 없이 설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해나가는 저의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항상 원합니다. 진실한 설교만이, 우렁찬 목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결국 설교는, 나 자신을 향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마음에 넣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가장 먼저 넣고 저의 마음 안에 닿아야 합니다. 단순한 성경 교사가 아니라 설교자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앞에서 먼저 엎드리고, 그 안에서 내가 먼저 변해야 하며, 그것이 부담이고 또 영광입니다. 

결국 가장 어려운 것이, '나의 설교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설교를 위한 어떤 의미에서 유일한 방법도 '나의 설교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저의 설교가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설교는, 언제나 온전히 저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사역이 쌓여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목회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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