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 월요일

언제나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기회 속에서의 충성'이다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돌이켜보면 가슴 벅찬 순간이 많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속앓이를 한 부분도 있고 심한 육체적인 압박과 영적인 압박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저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 있는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부담이기도 하고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목회자의 삶은, 그 내면에 치열한 고민이 있습니다. 가장 앞에는 주어진 설교와 목회의 퀄리티를 유지해야만 하는 압박이 있고, 교회의 영적인 부분 재정적인 부분 또 정서적인 부분까지 늘 마음에 두고 살펴야 합니다. 

두주 정도 독서 노트를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여러군데 접어 놓은 리처드 마우의 책을 가방에 넣고만 다녔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아쉬움과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독서를 하고 정리를 하고 그것을 저의 내면에 쌓아가야만 저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의 방심이 수준을 현격하게 떨어트립니다. 당연히 수준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을 실제로 반드시 수행해 내야 하고 그것은 참으로 고된 작업입니다. 

오늘에서야 마우의 책에 대한 정리를 마칩니다. 인상적이었던 여러 부분들을 다시 음미하면서 옵시디언에 정리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을 성도님들께 혹은 지인들에게 말씀드리거나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와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은 자신의 삶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탁월한 수준으로 가꿔 가시기를 늘 바라곤 있습니다. 

* 한 걸음씩 계속 걸어가는 것에 대하여
- 옵시디언에 독서 명언을 모으기 시작하다

마우의 글을  정리하면서, '주신 기회에 반응하며 충성하는 것이 성도의 인생이다' 라는 부분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담임 목회는 정말 많은 권한이 있고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목회의 거의 모든 부분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또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영적인 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순간에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마음이 은근히 들어옵니다. 그러나 마우의 말처럼 '이 세계 전체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런 것처럼 저 역시 소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제 당회는 참 좋았습니다. 장로님들과 굉장히 건설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시는 많은 기회들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고,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오직 주님께 의지할 따름입니다. 올 한해를 여기까지 이끄신 주님, 오늘 하루도, 또 다가올 한해도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5년 12월 18일 목요일

고 이병욱 장로님을 기억하며

 


목회는 '관계'입니다.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라는 딱딱한 표현 보다는, 그저 나의 가족의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의 삼촌과 형님들이시며, 또 저의 어머니와 누이들이십니다. 

고 이병욱 장로님은 참 귀한 분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또 성도님들에게 먼저 다가와서 인사하시던 따뜻한 분이십니다. 얼마나 노방 전도를 열심히 하셨는지 온 성도들의 존경을 받고 또 사시던 아파트에서도 모르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장로님이 소천하시기 한주 전에 장로님 댁에 방문해서 심방을 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밖에 없다라는 말씀을 나누셨고 참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소천하시기 하루 전에는 주일에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어느 분 옆에서 식사를 하면 좋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장로님 옆 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습니다. 장로님의 젊은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했지만, 그래서 본인은 무엇이든지 맛있었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몇개월 전에는 장로님과 함께 기도회를 참석했습니다. 교회 연합 기도회인데 다른 성도님들은 스케쥴이 여의치 않으셔서 아무도 못 오셨지만, 장로님께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오고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장로님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 사별한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천하시는 날은 평소처럼 운동하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참 마음 아파했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요일이 장례를 치뤘지만 그래도 주일에 왠지 장로님이 교회로 나오실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교회 전도지가 준비되면 꼭 노방 전도 같이 나가자고 장로님과 약속했는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장로님과의 좋은 추억을 쌓도록 해주셨습니다. 저의 셀폰에서 함께 기도회 가던 길에 찍은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께서 보내주신 장로님께서 소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도 함께 저장해 놓습니다. 아름다운 길과 트리가 십자가 처럼 보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전하기를 위해 애를 쓰신 장로님의 귀한 인생에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추모 예배의 설교 제목은 '모범적인 믿음을 본 받으라' 였습니다. 고심하며 지었는데, 고인의 지나온 삶을 생각하면 참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또 실제로 설교하면서 장로님의 믿음, 감사, 헌신, 복음에 대한 열정, 그 모든 것을 제 마음에 담았습니다. 

마지막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언젠가 주님 나라에서 다시 뵐 때에, 사실 그때 필요는 없겠지만 준비한 전도지를 자랑스럽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못 다 들은 장로님의 이야기들을 이어 들으며 영원히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30) - 임직의 기쁨을 함께 누리며

 



목회를 하면서 많은 기쁨이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기쁨은 직분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미 교회를 귀하게 섬겨오신 분들에게 직분을 맡기고 더욱 열심히 섬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드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시는 것이며, 당회와 목회자는 그 역할을 실질적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가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서 세워지고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저의 양가 부모님들도 그렇고 저와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직분을 받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서 섬겨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분을 받으시는 분들을 보면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드리겠다는 그 마음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볼티모어 교회를 무려 51년 동안이나 돌보셨습니다. 그 안에는 수 많은 분들의 눈물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네분의 안수 집사님과 열한분의 권사님을 세워지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억지로 직분을 맡길 수 없고 사람이 사람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귀한 열다섯분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함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로 세우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양육의 과정부터 투표까지 참 좋았습니다. 물론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을 고백합니다. 특별히 임직하시는 분들이 더 성숙해지시고 헌신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 참 좋았습니다. 모든 것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임직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참 많이 기도하면서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순서를 하는 것이 가장 덕스러울까? 어떻게 해야 임직하시는 분들의 평생에 남을 만한 임직식이 될까? 어떻게 해야 성도님들이 함께 은혜와 기쁨을 누리실 수 있을까? 제 마음 안에 계속 있던 고민이고 기도 제목입니다. 

감사하게도 모든 순서가 자연스러웠습니다. 특히 임직패를 전달해 드리는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 받을 때가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문구를 정성스럽게 읽어드렸습니다. 한분 한분의 성함을 부르며, 평생을 주님 앞에 신실한 직분자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임직패를 드렸습니다. 

또한 제가 마음을 많이 썼던 부분은 교인 서약입니다. '1. 볼티모어 교회 모든 성도들은, 오늘 임직 받은 안수집사와 권사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인 줄 믿고 이들을 주 안에서 존경하며 사랑하기로 서약하십니까? 2. 또한, 이들이 맡은 직무를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며 함께 마음을 모아 협력하기로 서약하십니까?'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은, 직분자를 세우는 것이 단순히 그 사람들만 수고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서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을 들인 부분인데 서약할 때에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함께 서약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의 '아멘'이라는 대답이 참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임직식을 위해서 당회의 장로님들을 비롯해서 모든 성도님들이 수고하셨습니다. 교회 구석 구석에 성도님들의 손길이 있었고 교회 전체가 행복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번에 임직 받으신 귀한 안수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마음껏 일하실 것을 믿고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볼티모어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로 더욱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One of the greatest joys in ministry is ordaining new leaders. For 51 years, God has faithfully cared for Baltimore Church through the tears and labors of many. Building on this legacy, I am deeply grateful for the four deacons and eleven elderesses (Kwon-sas) who have been set apart. It was God who moved their hearts to stand as faithful servants for His kingdom. 

From my youth, I have seen the Kingdom of God expand through dedicated individuals, including my own family. This is why I am moved when I see others accept this call; their willingness to offer themselves to the church is truly beautiful. Throughout the process from training to the vote, I saw the Holy Spirit at work, maturing our leaders and fostering a spirit of devotion. 

The ordination ceremony was the fruit of much prayer. Presenting the plaques was especially touching; as I read each name, I prayed they would remain faithful to the Lord for a lifetime. The highlight was the "Congregational Vows." Hearing the congregation’s warm "Amen" reminded us that we are one body, committed to supporting our leaders through love and prayer. 

I sincerely thank the Session and every member who worked to make this day a celebration. I am confident that God will work mightily through these new leaders. May Baltimore Church continue to flourish as a community that truly delights the heart of God.

* 볼티모어 교회 칼럼, 목회의 은혜를 나누며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5/02/blog-post.html

2025년 12월 16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1) - 저 들 밖에 한밤중에



1. 가사 살펴보기

저 들 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천사들이 전하여 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저 동방에 별 하나가 이상한 빛을 비추어
이 땅 위에 큰 영광이 나타날 징조 보였네 

그 한 별이 베들레헴 향하여 바로 가더니
아기 예수 누우신 집 그 위에 오자 멈췄네 

저 동방의 박사들이 세 아기보고 절하고
그 보배합 다 열어서 세 가지 예물 드렸네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2. 곡 소개

이 찬양은 영국에서 17세기에 불렸던 전통 캐롤인 ‘The First Noel’을 번안한 찬양이다.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과 그분의 탄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낸 너무나 탁월한 찬양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누가복음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아우구스투스는 재위 기간(기원전 27년–서기 14년) 동안 다른 황제들의 통치를 지배하던 내전과 광범위한 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를 온 세상의 구원자라고 찬양하는 문구를 새긴 신전을 세웠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터키에 위치한 프리에네 도시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일은 그를 통해 세상에 전해진 복음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을 세상의 참된 구원자, 곧 참된 좋은 소식의 전달자이자 선포자로 묘사합니다. 아우구스투스와 달리 예수님만이 참된 구원을 제공하실 수 있습니다.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Lk 2:14.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그분의 죽음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엄청난 죄의 빚으로부터 대속하는 대가였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대속적 속죄를 명확하게 가르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392.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에서 후렴에 반복되는 ‘노엘’이라는 표현이 이 곡의 핵심을 담고 있다. 노엘은 중세 라틴어인 natalis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프랑스어로, 예수의 탄생, 성탄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금 더 넓게 보면 이 찬양 안에서는 성탄의 기쁨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찬양을 부르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정한 기쁨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는 슬픔과 아픔과 눈물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그리고 그 죄로 인한 결과로 인해서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난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하여, 죄인은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분은 왕이시지만 자신을 낮추셨다.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분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며,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 오히려 죄인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탄의 계절 가운데, 모든 슬픔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마음에 깊이 묵상하고 붙들기를 원한다. 삶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아기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으로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고 풍성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5년 12월 9일 화요일

삶으로 드리는 찬양 (200) - 주 말씀 내 삶 비출 때


1. 가사 살펴보기

주 말씀 내 삶 비출 때 감사하게 하소서
내게 주신 말씀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주 말씀 내 삶 비출 때 겸손하게 하소서
내게 주신 말씀 나의 삶 되어 주를 닮게 하소서

주 말씀 내 삶 비출 때 예배하게 하소서
나의 모든 삶 향기로운 제물 되어 예배하게 하소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시니
그 말씀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살아가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 나를 가르치소서 주 말씀 떠나지 않게 하소서

 

2. 곡 소개

곡은, 2022년에 발매된 조찬미의 정규 2집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주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면서 그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는 성도의 행복과 기쁨, 그리고 변화를 담고 있는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119: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시편 119:133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야고보서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 즉 성령의 감동으로 된 성경,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가져오신 계시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풍성히라는 것은 ‘넘치도록 또는 호화로울 정도로 풍부하게’ 라고 더 충분하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거하다라는 것은 ‘살다’ 또는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다’ 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신자의 삶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야 하며, 모든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John F. MacArthur Jr.,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h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2006), Col 3:16.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는 성도의 내면과 삶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감사하게 되며, 그분을 예배하게 되고, 또한 주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찬양은, 성도의 인생 전체를 담아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읽고 묵상하고 그것을 삶 가운데 적용하는 가장 실제적인 변화가 모든 성도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이 아름다운 찬양을 통해서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욱 간절해 지기를 원한다. 우리의 마음이 말씀으로 온전히 채워지고 다스려지는 복되고 성숙한 수준으로 힘써 나아가기를 원한다. 우리의 평생의 삶 가운데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참된 행복과 넘치는 기쁨을 누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대한다

* '삶으로 드리는 찬양' 전체 묵상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06/1_30.html   

2025년 12월 8일 월요일

로마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통독을 마쳤습니다 with 드라마바이블

 

담임 목회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영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몰아닥치는 목회 스케쥴 속에서, 나의 영혼의 상태를 돌보며 모든 상황에서 건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제 자신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바이블은 최고의 선택입니다. 잠깐의 짬을 내어 언제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형태로 녹음되었기 때문에 생동감이 있어, 지쳐버린 저의 마음에 힘을 불어 넣어 줍니다. 

원래는 드라마 바이블로 전체 통독을 했지만, 올해 하반기는 전략을 약간 바꾸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가장 많이 인용하게 되는 로마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집중해서 들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창세기부터 쭉 듣는 것도 좋지만, 바쁜 목회 일정 속에서 설교 준비와 결합하기 위해 좀 더 효율성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요한계시록 마지막까지 들었습니다. 일단 마음이 참 뿌듯했습니다.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는 것은,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능할 때에 매일 조금씩 들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요한계시록까지 통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의도한대로, 설교 때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부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목회자는 항상 설교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 주일이 시작되면, 그 주의 새벽과 주일 설교까지 일주일의 본문을 머리에 담고 다닙니다. 그런데 서신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꾸준하게 들으면서, 준비하는 본문과 매치가 되는 중요한 구절들을 참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하나님께서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년부터는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온 성도님들이 일독을 도전하게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구약부터 순서대로 하는 것보다 구약과 신약을 함께 결합해서 하는 형태가 훨씬 덜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20분 신구약 함께 읽기'로 실행할 예정입니다. 


제가 섬기는 성도님들이 언제나 마음이 평온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섬기는 목회자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제가 언제나 생각하는 것은, 말씀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생명력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많이 쓰는 것이 제 자신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당연히 저도 삶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낙심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영원하며 견고한 주님의 말씀이 있기에, 저의 평생과 목회를 주님께서 인도하시리라 믿고 오늘도 전진합니다.

2025년 12월 3일 수요일

나의 부모님은 항상 어디에든 계신다

 

저의 아버지는 선장으로 일하셨습니다. 일년에 거의 9개월은 해외에 계셨기 때문에 저는 거의 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아버지께서 서울 본사에서 일하시게 되면서, 그제서야 온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이 가장 많은 시간이 있습니다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입니다. 저는 그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이미 훌쩍 커버린 저로서는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넉넉하지가 않았습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저의 세상 속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습니다. 

결혼하고 조금 철이 들었습니다. 이제서야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는데, 결혼을 하고 유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의 15년이 지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유학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한인 교회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한편으로는 섭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가까이 뵐 수 없다는 것이 마음 한편에 너무 큰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래도 건강하신 편이지만 과연 얼굴을 마주하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아마 평생에 몇달이 전부일 것입니다. 

어제는 늦은 시간 양로원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양로원을 널싱홈이라고 부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용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보조가 없이는 현실적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설도 천차만별입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나는 곳도 가봤고, 또 호텔처럼 좋은 시설을 갖춘 곳도 방문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시설과 상관없이 그곳은 외롭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 들어오시지만,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십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 조차 쉽지 않지만, 그러나 정작 그곳에 계신 분들은 정서적인 어려움으로 더 힘들어합니다. 

제가 널싱홈을 방문한 목적은 두분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그 중에 한분은 아주 예전에 볼티모어교회에 출석하셨던 집사님이십니다. 거기 계신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외롭게 앉아 계시는데 많이 마르셨고 식사도 제대로 하시지 않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집사님의 외로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손을 꼭 잡고 기도해드렸습니다. 인생은 너무나 연약하기에 결국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노년의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이든 모두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더 간절하고 진실해 집니다. 

어르신들을 뵈면 항상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심방하면 꼭 부모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나의 부모님도 이렇게 연세가 드시겠구나, 그때에는 내가 이분을 방문하고 위로한 것처럼 누군가가 꼭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저의 심방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심방을 끝나고 나오는데 박종호 장로님의 '나그네의 집'이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찬양이고 또 따뜻한 찬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위해서 우시고 찾으신 것처럼, 저의 작은 인생 역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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