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를 생각하면 마음이 막막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과정이 그렇습니다. 본문을 정해 놓고서도 마치 망망 대해를 앞에 두고 그 바다를 지나가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세상에, 이번주는 어떻게 준비해야하지? 말씀은 너무나 넓고 광대하며, 저는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가끔씩은 더 이상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기대는 큰 부담이 되고, 제 자신을 향한 저의 기대조차 부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부담은, 매주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목사는 프로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최선을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영적인 일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어떤 조직의 리더로서도 저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은, 목회는 카오스라는 것입니다. 혼돈 그 자체입니다. 교회는 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 속에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역학적인 관계 속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목회자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특히 담임 목사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설교의 시간 만큼은 오롯이 목회자의 시간입니다. 모두가 경청하는 바로 그 시간, 그 순간을 위해서 목회자는 최선을 다합니다. 설교는 어렵지만,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시간이고, 제 자신을 그곳에 던져야 합니다.
겨우 삼십분 남짓한 시간인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그것을 위해서 모든 제반 조건을 조절하면서 자신을 관리해야 합니다. 평소의 성경 통독과 묵상, 꾸준한 독서와 말씀에 대한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목회를 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구나. 한동안 설교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되어서 참 괴로웠고, 지금도 그런 느낌이 조금은 듭니다. 학적이고 딱딱하고 어려운 설교, 그리고 쉽고 금방 이해되는 묵상과 같은 설교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 여러번 되네입니다. 너무 어렵게 하지말고 쉬운 설교로 준비하자. 들리지 않는 설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계속 발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팀 그로버가 이야기한 것처럼, 저에게는 애초에 천장도 없고 바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도전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동네 길을 잠깐 걸었습니다. 담임 목회를 시작한지 8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동네를 걸을 여유가 드디어 생겼습니다. 메릴랜드는 산지가 많아 동네길도 오르막이 꽤 높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고 속도가 느려집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걸었더니 정상으로 올라왔습니다. 여름의 하늘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여기까지 이끄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자리까지 밀어 붙이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습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 부담 혹은 무거움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특히 목회자는 주로 듣는 입장입니다. 아마 평생 그럴 것입니다.
요즘에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보다는, 저의 일을 잘 하기 위해서 더 노력합니다. 저의 사명을 감당하기에도 인생이 참 짧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주 가느다란 선 위를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좌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이 앞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의 사명이 더 선명해 지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에게는 목회가 전부입니다. 목회는 '카오스 속에서 걸어가는 작은 한 걸음'입니다. 정의를 내리고 나니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재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때서야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진실한 기도가 나옵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마음에 빛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저 기도하고, 그저 행동하고, 그렇게 목회의 길을 걸어갑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너무나 암담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난 이 시간에 고백하는 것은, 그 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씩은,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나라는 눈물이 핑도는 원망의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대로 그렇게 하셨고, 저를 조금은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빚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 잘 감당하기 원하고, 설교를 잘 감당하기 원합니다. 성도님들은, 좋은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단 한 번도 방심할 수가 없고, 단 한번도 실패하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제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목표를 그렇게 잡고 싶습니다.
세상에 수 많은 직업이 있고, 직업적인 동등성이라는 측면에서 목회자는 다른 직업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에서 대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은, 목회자만이 가진 가장 큰 특권이자 영광입니다. 그 일은 해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며, 삶의 전부를 다 태워도 아깝지 않은 어떤 것입니다.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그저 포기만 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주저 앉아버리기에는 이미 맡겨진 것들이 너무 커졌습니다. 그저 작은 한걸음, 하루를 성실하게, 그래서 그 연장선 안에서 이어지는 그 사명의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썩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길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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