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퍼즐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조각을 맞추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설프게 모으고 시도했던 저의 작은 조각들 조차 기꺼이 사용하십니다.
저의 청년 시절, 어떻게든 좋은 리더가 되고 싶어서 읽었던 래리킹의 대화의 신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이십년이 지나 목회자로 교회의 리더로, 저의 경험과 느낀 것들을 마음껏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순장님들과 '대화의 신'의 일부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내가 리더이기 때문에, 내가 순장이기 때문에 당신은 나의 가르침을 듣고 배워야 한다라는 패러다임은 매우 견고한 성과 같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동안 이 패러다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특별히 목회자들이 그렇습니다.
물론 강의도 필요합니다. 단, 정말 탁월한 강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들으면서 눈을 떼지 못하는 수준의 강의라면 긴 시간의 강의도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지루한 강의,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논리들로 채워진 강의들이 넘쳐나는 현실입니다.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면서, 경청의 힘'을 순장님들이 경험하시기를 항상 바랬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신에서 제가 읽고 좋았던 부분들을 먼저 나눠드리고, 간단한 북클럽 형태로 나누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첫 시작 멘트는 이것이었습니다. "OOO 순장님, 나눠드린 래리킹의 글을 읽으시면서 좀 어떠셨어요?"
저는 '열린 질문'을 좋아합니다. 래리킹이 자신의 책에서 저에게 가르쳐준 그대로 입니다. 열린 질문을 할 때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마음껏 들을 수 있습니다. 좁고 답답한 저의 사고로 그 사람을 한정 짓지 않고, 그 사람의 능력과 경험 그리고 상상력을 마음 껏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어제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의 순장님들이 미리 읽고 준비를 해오셨습니다. 저를 잘 아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저의 준비에 대한 그리고 모임에 대한 기대가 엿 보여서 좋았습니다. 역시나 북클럽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경청에 대해서 30분을 강의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약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미리 고민하고 나누는 것은 최소 그것의 10배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래리킹의 조언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2대 8의 비율을 스스로 정하셨습니다. 듣는 것은 8,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는 2 입니다. 탁월한 결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한 모든 순장님들도 그리고 당연히 저도 이 비율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래리킹의 대화 법이 마치 함정을 놓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시기도 했습니다. 직업적으로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을 교회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화라는 그 깊은 주제 속에서, 생각해볼 만한 중요한 실마리를 찾은 듯 합니다.
전반적으로 참 좋았습니다. 정말 늦은 시간, 피곤한 가운데 진행한 모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극도로 말을 아꼈습니다. 북클럽을 인도할 수록, 저의 말을 점점 줄이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목회자로서 저의 목표는, 함께하는 분들의 성장이지 제가 말을 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분 한분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그분의 리더십을 가늠하고 그 말들을 분석하면서 들었습니다. 경청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각 순장님들의 필요에 맞는 아주 짧은 그러나 적절한 멘트로 섬겼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어떠신가요? 당신이 어떤 자리에 있든지 경청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경청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회복시키고 그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짧은 글을 적은 저의 마음 가운데에도 더 할 수 없는 큰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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