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리 왔나요
주님께 돌아가기엔 사랑의 주님 그
품을 떠나 내 영혼 잃어버린 지금 너무 늦은 건가요
내 영혼 회복 하기엔 수 많은 죄악 속에
갇혀서 주님을 잃어버린 지금
하지만 내 영혼
주님 기다려요 변함 없는 주님의
사랑을 내 모습 이대로
주께 돌아가요 나의 손을 잡아
주소서
다시 주님의 얼굴
내 영혼 볼 수 있도록 나를 구원 하소서 다시 주의 임재
가운데 내 영혼 살 수 있도록
2. 곡 소개
이 곡은, 고형원 선교사님의 곡이다. 이 곡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주님 앞에 나가기를 주저하는 성도의 아픈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주님을 찾는 회개의 깊은 고백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요엘 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2:12 'Even now,' declares the LORD, 'return to me with all your
heart, with fasting and weeping and mourning.'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2:13 Rend your heart and not
your garments. Return to the LORD your God, for he is gracious and
compassionate,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e, and he relents from sending
calamity. 2: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2:14 Who knows?
He may turn and have pity and leave behind a blessing--grain offerings and
drink offerings for the LORD your God.
로마서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개역개정) 2:4 Or do you show contempt for the riches of his kindness,
forbearance and patience, not realizing that God’s kindness is intended to lead
you to repentance? (NIV)
Joel 2:12–13 provides occasion to reflect on the nature
of evangelical repentance. As the Hebrew word “turn” implies, repentance
involves a reversal of direction, demanding a new way of thinking and living. 요엘2장12-13절은복음적인회개의본질에대해서숙고할수있는기회를줍니다. “돌아서다”라는히브리어단어가암시하는것처럼, 회개는방향을바꾸는것을포함하는것이고, 새로운사고방식과새로운생활방식을요구합니다.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1251.
2:12–17 Once
again, in light of the coming of the day of the Lord, the call is to repent.
Joel says “return” to the Lord (vv. 12–13). The Hebrew word means “turn.” True
repentance is not only sorrow that we sinned against the Lord but a
determination to change direction in our lives—turning from the sin to God, in
love and dependence. You can tell that you have truly repented if you are
determined to turn your back on sin and walk with the Lord in loving obedience,
through the power he provides. 주의날이다가오기때문에, 회개하라고선지가가외칩니다. 요엘은여호와께“돌아오라” 라고말합니다. 히브리어단어는“돌리다”라는것을의미합니다. 참된회개는, 우리가주님께죄를지은것에대한슬픔일뿐만아니라, 죄로부터우리의삶의방향을바꾸어하나님을사랑하고의존하며돌이키겠다는결심입니다.
Our
motive for heartfelt “returning” to the Lord is his own character: “gracious
and merciful,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steadfast love” (v. 13; quoting
Ex. 34:6). The apostle Paul will later echo these truths, saying, “God’s
kindness is meant to lead you to repentance” (Rom. 2:4). 하나님께돌이키고자하는마음에서부터의진실한동기는, 그분자신의성품입니다. 그분은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더디하시고, 인자가많은분이십니다. 사도바울은나중에이진리를되풀이할것입니다. 로마서2장4절에서, “하나님의인자하심이너를인도하여회개하게하신다” 라고말씀합니다.
Timothy Z. Witmer, “Joel,”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167–1168.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성경적인 회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잘 드러내고 있다. 성경적인 회개는 먼저,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죄인이 깊이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하여 주님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과의 관계의 진실한 회복을 통해서 영혼이 회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기본적인
우리의 영적인 태도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 마치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것처럼, 죄인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피하면, 우리의 영혼이 점점 마르며 영적인 괴로움을 경험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주님과 너무나 멀어졌다”라는 것을 느낄 때라도, 기꺼이 주님 앞에 마음을 돌이킬 수 있고
반드시 그러해야만 한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키도록
친히 인도하시며 회개의 자리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해야겠다고 마음에 결심한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찬양을 부를 수 있는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도는, 자신의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나의 마음과 삶을 돌이키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임재 가운데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또한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슬픈 생각과 낙심한 감정,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조차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깊은 감격의 찬양을 올려드려야 하는 것이다.
플러그인 얼라이언스를 오래 사용하면서, "할인 패턴"을 어느 정도 익혔습니다. 그리고 Dear Reality dearVR MONITOR는 정말 할인율이 가장 적은 플러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메가 세일 기간에, 저에게 보내주는 monthly voucher를 적용해서 정말 저렴하게 구입하였습니다. 아마 30불 정도에 구입한 듯 하네요. 혹시라도 구입을 원하는시는 분들은, 할인 기간에 바우처를 추가로 해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저렴할 듯 합니다.
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운드겠죠, 일단 아래 그림처럼 생겼습니다. 디자인적으로는 매우 심플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마치 스튜디오 모니터 앞에 있는 듯한 이미지를 띄워줍니다.
저는 믹싱과 마스터링을 다른 템플릿으로 띄워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믹싱 템플릿의 "마스터 트랙"에 플러그인을 띄워 놓았습니다. 이미지 좌측 상단에 보시는 Morphit은, 위에 링크에서 보시는 것처럼 순수하게 헤드폰 보정 플러그인입니다. dearVR MONITOR와 번걸아가면서 사용하면서 믹싱을 테스트하는 용도입니다.
일단 dearVR MONITOR를 걸면, 게인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맨 우측 하단에 마스터게인을 통해서 음량을 보정을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스테레오 환경이기 때문에 복잡한 것이 없습니다. 홈페이지를 보면 서라운드 등을 포함해서 다양한 출력 포멧으로 믹싱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기본적인 셋팅으로 사용중입니다. SCENE은 Mix Room A 입니다. 이 회사에서 준비한 가장 표준적인 믹싱 룸입니다. 다양한 환경이 준비되어 있는데, 기본도 겨우 적응하는 수준이라 다른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 그리고 옆에 AMBIENCE 와 FOCUS는 사실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둘다 기본 값으로만 사용합니다.
그리고 하나 괜찮은 것은, 메뉴바 우측 상단에 HP COMPENSATION입니다. 위에 Morphit처럼 헤드폰의 특성을 보정해서 최대한 플랫하게 사운드를 바꿔주는 기능입니다. 다행히 제가 쓰는 모델이 들어가 있어서 On으로 놓아 두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실제 사운드의 느낌은 어떨까요? 먼저 주의하실 것은, 소리라는 것은 "정말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기분에 따라서도 늘 듣던 음악이 다르게 들릴 정도이니, 사실 객관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정도로 말씀드리자면, 적어도 WAVES에서 나온 헤드폰 믹싱 플러그인보다는 Dear Reality dearVR MONITOR가 훨씬 낫다는 느낌입니다.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플러그인을 거는 순간, 자연스럽게 소리를 헤드폰 바깥으로 빼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내면서, 상당히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스튜디오 모니터로 듣는 듯한 감각을 줍니다.
그래서 이번에 만든 곡은 의도적으로 스피커를 아예 쓰지 않고, Dear Reality dearVR MONITOR만 사용해서 믹싱했습니다. 헤드폰으로만 들으면서, 최대한 보컬과 피아노를 밸런스를 잡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보컬은 작고 큰 부분이 있으니, 업컴프레서를 사용해서 살짝 약한 부분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피아노는 볼륨 엔벨롭을 통해서 밸런스를 조절했습니다. 한번 실제 곡을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Dear Reality dearVR MONITOR 장점
Dear Reality dearVR MONITOR로 만족할 만큼 모니터링을 한 다음에, Morphit만 사용해서 다시 한번 들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들으면서, 제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느낀 것이 세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로는, "보컬의 로우컷 지점"을 잡는 것이 훨씬 수월했습니다. 제 목소리는 웅웅 거리는 소리가 굉장히 심합니다. 200hz 정도에 계속 불규칙적으로 몰리는데, 단순히 다이나믹 이큐로도 해결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로우컷 지점을 잡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냥 헤드폰으로는 거의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Dear Reality dearVR MONITOR를 걸었더니, 어느 지점에서 로우컷을 해야할지를 굉장히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로우컷 주파수를 올리다가 라디오 소리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 전 지점까지 로우컷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느꼈는데, 단순히 헤드폰만으로 믹싱할 때는 너무 찾기 어려웠다면, Dear Reality dearVR MONITOR를 사용할 때에는 "그 지점"이 정확하게 들려서 판단할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로는, 약간 메이저 음반 들을 때의 느낌이 났다는 것입니다. 제가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아노와 보컬의 밸런스"가 어느 정도 맞게 들렸다는 의미입니다.
메이저 음반들을 들어보면, 분명히 MR이 괜찮게 크게 들리는데, 보컬이 묻히지 않고 선명하게 잘 살아납니다. 묻히지만 묻히지 않는 어떤 그런 특정한 느낌이 있습니다. 단순히 이큐의 문제가 아니라, 밸런스의 문제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저의 곡에서, 약간 고급스러운 밸런스가 믹싱에서 묻어났습니다. Dear Reality dearVR MONITOR를 들으면서 믹싱을 한 결과가 밸런스가 정말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신기하게도, 믹싱한 결과물을 "스피커로 들어봐도" 어색하지 않고 "헤드폰을 통해서 들어도" 어색함이 거의 없습니다. 플러그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헤드폰으로만 믹싱했지만, 스피커로 듣는 것처럼 믹싱이 되었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점은, "리버브 양"이 제가 의도한 대로 적당히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순히 헤드폰 보정만으로는 안 되던 부분인데, Dear Reality dearVR MONITOR로 모니터하면서 리버브 양을 넣었더니, 제가 의도한 것과 거의 90퍼센트 정도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굉장히 기분이 좋네요. :)
* Dear Reality dearVR MONITOR 단점
그런데 단점도 있습니다. Dear Reality dearVR MONITOR만 사용하면, 저음 영역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큐로 저음에 힘을 줘도 데시벨을 올린 만큼 크게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300-500hz 정도를 체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일단 보컬과 피아노의 밸런스를 잡고서는, 피아노 사운드만 잡기 위해서 Morphit만 사용해서 이큐를 약간 조절했습니다. 저는 단지 피아노의 사운드를 약간 무겁게 만들고 싶었는데 의도한대로 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만약에 베이스 킥이나 다른 악기가 많이 들어가게 되면 또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네요. 실제로 나중에 여러 트랙을 한꺼번에 믹싱해 보면 아마 더 흥미로울 듯 합니다.
* Dear Reality dearVR MONITOR 결론
일단 굉장히 오랫동안 사용해보고 싶었는데, 제대로 처음으로 사용해봐서 마음이 참 즐겁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굉장히 사운드가 자연스러워서 그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음 컨트롤이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보조적으로 Morphit을 사용해서 스테레오로 그대로 들으면서 밸런스를 조절할 수 있으니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모니터를 하셔야 하는 분들이라면 꼭 필요한 플러그인이라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제 관점에서는, 헤드폰 믹싱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계속 사용하면서 최대한 효율을 이끌어내봐야겠습니다.
이번 설교는, 제가 정했다기 보다는 정해진 본문입니다. 함께 섬기는 부목사님과 주일 설교를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인데, "매일 성경" 본문으로 하는 것으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본문이 민수기였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민수기 본문의 첫 설교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너무 어려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민수기 본문은 정말 까다롭습니다. 아마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굳이 정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스토리가 등장하거나 차라리 교리적인 본문이,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명령과 숫자, 그리고 지금 시대와 정말 동떨어진 것 처럼 느껴지는 정결 예법이 설교 본문이 된다면, 막막한 것이 사실입니다.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본문을 계속 묵상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그것을 성도님들에게 최대한 잘 들리고 이해되도록 구성하는 방법 뿐입니다. 이미 설교 스케쥴이 나왔기 때문에, 설교 본문을 처음 읽고 준비한 것부터 따진다면, 대략 두주 반 정도 준비한 설교입니다.
* "설교의 전체 구조"는 어떠했는가?
이번 본문을 묵상하면서, 두가지 큰 틀을 잡았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거룩을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과 연결해서, "여호와 자신이 그 진영 안에 있기 때문에 거룩을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것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공동체 안에서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출병이 무엇인지, 그리고 악성 피부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데에만 십분 이상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루한 전개를 사용하면, 성도님들이 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아주 간결하게 짚고 넘어가면서, 오히려 "좀 더 도전적인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요구를 하실 수 있는 분이신가? 그리고 과연 그러한 요구가 합당한가? 에 대한 도전적인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불신자를 염두에 둔 구조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이 자주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신자이지만 믿음이 연약한 이들에게 도전을 줄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일종의 답변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설명"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해답으로서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 "설교의 서두"를 어떻게 열 것인가?
지금까지 들어본 대략 스무편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설교 서두에 "설교 전체 구조를 제시"합니다. 설교가 전체 구성이 세가지 대지라면, 세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고 미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것이 썩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에 대한 신비감 혹은 기대감"을 떨어트리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 제 수준에서는 그렇게 서두에 이야기하고서 설교 본론에 들어가서 기대감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감히 시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설교의 경우에는, 민수기로 처음 여는 설교이기 때문에, 적어도 민수기가 무엇인가를 설명은 반드시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출애굽기에 이어지는 스토리를 아주 간략하게 제시하면서 설교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접근이 좋은 것은,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스토리를 이해하면서 내용을 따라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책"은 어떻게 설교에 인용했는가?
본격적으로 신앙 혹은 신학 서적을 읽은 것이 스무살 부터입니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난 지금에와서야, 지금까지 읽고 고민한 모든 것이 꽃을 피운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책들을 함께 읽기 시작한 것이 오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설교문을 쓰면서 큰 막힘이 적고, 생각을 풀어내도 신학인 틀에서 큰 오류가 없어 보입니다. 저에게 이런 날이 올 줄 감히 생각하지 못했고, 누구도 이런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이해력이 느리고 속도가 느린 사람도, 결국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편의 설교 가운데, 여섯권의 책을 인용했습니다. 굳이 "꼭 이만큼 인용해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번 설교는 이 정도 인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인용한 것입니다. 세권 정도는 평소에 좋아서 기억하던 부분이고, 기독교 강요와 나를 따르라의 한 부분은 설교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찾은 것입니다.
아래에서 보시는 것처럼, 심지어 "책의 표지에 저자와 책 이름"을 넣고, 이후에 이어서 "책의 내용"을 본당 화면에 띄우면서 사용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 설교자들 중에 누구도 이렇게까지 한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도전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따분하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인용함에 있어서 "그 지루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느낀 것은, 설교자가 책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그리고 또 어떤 깊이와 감정으로 그 책을 인용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인용한 두 권은, 탁월한 책들이지만 모두 기독교와 상관 없는 secular한 책들입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결론적으로 성도님들의 마음에 전혀 부담이 없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secular 한 책을 인용했지만, 오히려 제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전체 말씀"을 진중하게 받아들인 분들이 있어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적절하게 "그 책에 대해서 평가"를 한 것이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책의 논리와 비교하면서 "성경의 탁월함을 논증"했기 때문에, 더 성도님들의 마음이 오히려 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인용한 모든 내용들은, 단순히 설교의 논리를 이끌어가기 위한 내용이 아니라, "저의 마음이 완전히 담긴 내용들"이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책들을 인용하면서,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들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싶었습니다.
탁월한 저자들의 "모든 신학과 삶을 걸고 기록한 책"들이, 조금이라도 초라하게 인용되는 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읽고 느꼈던 마음의 기쁨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 온 마음을 담아서 읽고 인용하고, 그것이 성도님들의 마음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칼빈을 인용한 부분은,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대한 기독교 강요에 나오는 칼빈의 해설입니다. 읽으면서 제 마음에도 너무 마음에 감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때에도, 마치 제가 칼빈 자신이 된 것 처럼 최대한 감정을 넣어서 읽었습니다.
본회퍼는, "말씀에 대한 진실함과 자신의 신학"을 "자신의 생명"으로 증명한 사람입니다. 나를 따르라를 읽으면서, 그것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을 저절로 느낍니다. 그래서 저 역시, "정말 진지한 태도와 마음"으로 인용하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인용한 마이클 호튼의 언약 신학의 인용은, 수도 없이 줄을 치면서 그 책을 읽고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내용"입니다. 호튼의 신학 그리고 개혁주의의 핵심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설교의 마무리에 책을 인용하는 것은 왠만하면 하지 않았겠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 설교에 대한 "반응"들
설교를 마치고 예배 후에 인사를 하는데, 성도님들의 표정이 참 다양했습니다. 많이 당황하신 분들도 계셨고, 제 손을 꼭 붙잡고 너무 좋았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너무 감정적이지 않고 신학적인 깊이가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좋았다고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어려웠지만 왠지 모르게 좋았다는 분도 계셨고, 위로가 되었다고 아내를 통해서 연락 주신 분도 계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설교의 주제를 정확하게 이해한 분도 계시고, 구조나 책 인용이 상당히 파격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설교"를 들은 것 같았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제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겠다" 라고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동일한 설교를 듣고,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다양하게 역사하신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너무 지루했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이십분 정도면 딱 좋겠는데 너무 길었다고 이야기하시고, 또 너무 고차원적인 이야기라서 힘들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특히 칠십이 넘으신 어르신들이 그랬다고 반응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또 흥미로운 것은, 육십대 어르신 한 분 중에는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씀해 주신 분도 계십니다. 제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렇게 마음을 느끼셨다는 것이 설교자로서 행복했습니다.
제가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느낀 것이 정확하게 그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하다!, 겨우 40분이라는 시간에 이렇게 아름다운 내용을 이렇게 아름다운 구성으로 이렇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전하다니!" 존경하는 분의 수준에 아주 작게나마 다가갔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 "설교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설교자로서 항상 제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매력적인 설교가 되는가?" 입니다. 이 질문은, 아마 평생의 고민이 될 것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전략들은 모든 설교자들이 다 아는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설교는 "무엇인가"가 확실히 다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매력 포인트는 결국 "설교자의 어떤 본능적인 감각"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에전에 읽고 내용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본능에 가깝습니다. 성경을 묵상하다가 제 마음 속에서 거의 저절로 떠오른 것에 가깝습니다. 이 부분이 저는 항상 흥미롭습니다.
저는 재미있는 웹툰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의 웹툰은, "엄청난 내용 전개와 구성력"을 가집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고, 등장 인물들의 심리 안에서 일어나는 내용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이 모든 것을 탁월하게 연결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감동하면서 볼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팀켈러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들으면 들을 수록 매력적입니다. 지루할만 하면 예가 등장하는데, 그 예들은 반드시 논리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신학적인 자료들 그리고 심지어 기독교에 대적하는 사람들까지 인용하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습니다.
저는 이 "탁월함"들을 "계속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주에 있을 좋은 설교를 만들고 싶어 반짝 무엇인가 대단한 기술을 동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설교자가 "꾸준하게 무엇을 하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것"을 "자신의 오감과 영혼"으로 "지속적으로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성경 통독과 지속적인 묵상, 꾸준한 독서와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에 대한 연구"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꾸준하게 고민할 때에, 결국 설교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 어느 정도로 원고를 "연습"해야 할까?
제가 좋아하는 탑건 메버릭에는, 상징적인 숫자인 "10"이 등장합니다. 영화 초반에서 메버릭은 "마하 10"이라는 벽을 깨기 위해서 도전하고 성공합니다. 그리고 영화 중반을 넘어 주어지는 미션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10G"라는 중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10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인간이 이겨내야할 가장 완전한 목표와, 그것을 이뤄내는 메버릭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설교 원고는 목요일 정도에 90퍼센트 정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실제 설교의 삼일 전" 입니다. 원고를 쓰면서 이미 연습을 하지만, 제대로 연습하는 것이 항상 중요합니다.
원고가 완성된 후에 대략 세어보니, 방에서 일곱번 정도 소리내어서 모션과 함께 연습하고, 실제 본당 강대상에서 세번 정도 연습하였습니다. 도합 열 번입니다.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세어보니까 그렇더군요. 지금 교회에서 실제 강대상에서 설교를 세번이나 연습한 것은 처음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주일에 도합 세번의 설교를 해야합니다. 두번째가 끝이 나고 세번째 예배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몸의 힘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정신이 거의 흐려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설교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설교 후반부 중에 참 흥미로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거의 연습한 대로" 한 것입니다. 제 정신은 지쳐서 더 이상 설교의 내용을 따라갈 수 없지만, 여러번 연습한 것이 저의 몸과 근육에 남아서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나칠 정도로의 실전 연습"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더욱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 "무슨 자료"를 설교에 참조하였는가?
저는 항상 동일한 패턴입니다. 개역 성경 묵상, NET BIBLE 번역본, 추가 번역본과 원어 참조, 스터디 바이블, 주석, 사전 등의 순서입니다. 그리고 조금 저속한 표현일 수는 있겠으나, "닥치는대로 다 찾아보는 것" 이 저의 전략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우아한 설교 준비를 상상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설교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전투에 가깝습니다. 책을 읽고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우아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은 정말 처절합니다.
아래의 스터디 바이블들은, 모두 탁월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이해를 보여주고 설교의 큰 흐름을 결정해 주었습니다. 충분히 읽고 고민하면서 설교 내용에 반영한 것들입니다.
5:3without
the camp. Outside the boundary of the camp (v. 4). defile. To render unclean. whereof
I dwell. God’s presence was the reason for safeguarding the purity of the
camp. Approaching God requires clean hands and pure hearts (Ps. 24:3–4).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203.
1. The
expulsion of people from Israel’s camp for ceremonial uncleanness reminds us that
“the ungodly shall not stand in the judgment, nor sinners in the congregation
of the righteous” (Ps. 1:5). What a solemn matter! Have you been to Jesus for
the cleansing from sin found only in His blood? If we are in Christ then we
know that we have been made fit to approach the Lord and we can enjoy
fellowship with Him.
Joel R. Beeke, Michael P. V. Barrett, and
Gerald M. Bilkes, eds.,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4), 204.
5:2 DISEASE … DISCHARGE. Strict instructions were given to the
people in Leviticus 13–15 about diagnosing, treating, and dealing with
conditions that God defined as “unclean.” While this probably resulted in many
saved lives, it was also God’s way of teaching them the foundations of
holiness.
Even this
process, however, is a means of grace from God designed to purify his people
and to encourage all (including the disciplined individual) to cling more
tightly to Christ since our clean state is found in him alone. We enter the new
Jerusalem not having purified ourselves by our efforts but having been washed
in the blood of the Lamb (Rev. 1:5), so that our names are written in his book
of life (Rev. 21:27).
L. Michael Morales, “Numbers,” in Gospel
Transformation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ed. Bryan Chapell and Dane
Ortlund (Wheaton, IL: Crossway, 2013), 176.
거룩을 정의하는데 있어서는, 기본적으로는 LEXHAM 사전을 다 읽어 보았지만, 결국 깔끔하게 몇 단어로 정리한 것은, 넷 바이블의 각주를 참조하였습니다. 인용한 시편 24편 3절에 등장하는 거룩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로고스의 원어 검색으로, 거룩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출애굽기 3장 5절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각주입니다.
sn The word קֹדֶשׁ (qodesh, “holy”)
indicates “set apart, distinct, unique.” What made a mountain or other place
holy was the fact that God chose that place to reveal himself or to reside
among his people. Because God was in this place, the ground was different—it
was holy.
sn (study note)—Includes comments about historical or
cultural background, explanation of obscure phrases or brief discussions of
context, discussions of the theological point made by the biblical author,
cross references and references to Old Testament quotations or allusions in the
New Testament, and other information helpful to the modern reader.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Second Edition. (Denmark: Thomas Nelson, 2019).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공동체가 실제로 행동한 것이 중요했다"는 것은, 이미 제 개인 묵상으로도 끌어낸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John Crurrid의 주석을 통해서 좀 더 확신있게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What is at stake is not merely the people in the camp,
but the very sanctuary and dwelling place of God. Nothing unclean is to come
near that which sits in the centre of the camp, but it will be thrust outside
the camp. The final verse of the passage drives home the importance of the
action: three times the text says that Israel did as God had commanded them.
This triple emphasis is further heightened by the exact repetition at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verse: it literally reads, ‘Thus did the sons of
Israel … thus did the sons of Israel.’
John D. Currid, A Study Commentary
on Numbers, EP Study Commentary (Darlington, England; Carlisle,
PA: Evangelical Press, 2009), 87–88.
* 설교자의 "영광"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설교를 잘하는 것" 자체가 저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시편 84편을 묵상하다가, 제가 설교를 아무리 잘 해도, "하나님의 영광의 지극히 일부분"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제 인생 최고의 설교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이 감동과 은혜를 받은 설교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일억분의 일도 나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이, 오히려 제 마음을 참 편안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감히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감격했습니다.
저와 같이 초라하고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 자체가 이미 구원의 기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정말 작은 부분"이라도 드러날 수 있다면, 제 인생에 있어서 이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인생의 최고의 설교"가 되리라고 기대하고 또 어느 정도 예상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설교가 끝이나자 제 마음에는, 제가 잘하고 못하고는 그렇게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정작 설교를 마치니 정말 좋았던 것은,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성도님들의 섬기는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설교자의 가장 큰 영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이고, 또 앞으로 저의 설교가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 설교를 준비하며 살아갈 과정"이며, "제가 해왔던 일들"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처음 신학교 시절 설교를 배울 때 부터, 마인드맵으로 full text로 원고를 모두 쓰고, 그것이 연습이 되었습니다. 꾸준하게 독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힘들고 외로울 때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힘들었지만, 제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평가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익히고 배우는 것이 이번 설교에 정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겨우 몇개월의 공부와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저는 설교자로서 또 다른 차원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저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다른 사람의 길을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과, 그 확신"을 따라서 걸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결심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또 오늘 하루를 그렇게 걸어갈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의 사랑 날 완전케하네 주의 사랑 날 새롭게하네 끝이 없는 주의 사랑만이 내 영혼 자유케하시네
주의 사랑 날 완전케하네 주의 사랑 날 새롭게하네 오 주님 나의 삶을 통해 주 영광 나타내소서
2. 곡 소개
이 곡은, 마커스 찬양팀, 그리고 함부영씨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은, 시편 84편을
바탕으로 한 곡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과의 깊은 교제를 사모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서 영혼이 회복되어, 평생
동안 자신의 삶을 통해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고자 하는 갈망을 담은 곡이다.
3. 말씀으로 바라보기
시편 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84:1 For the director of music. According to gittith. Of the
Sons of Korah. A psalm. How lovely is your dwelling place, O LORD Almighty! 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84:2 My soul yearns, even faints, for the courts of the LORD; my
heart and my flesh cry out for the living God.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84:3 Even the sparrow has found a home, and the swallow a nest
for herself, where she may have her young--a place near your altar, O LORD
Almighty, my King and my God. 84: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84:4 Blessed are those who dwell in your house; they are ever
praising you. Selah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84:10 Better is one day in your courts than a thousand
elsewhere; I would rather be a door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dwell in
the tents of the wicked.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For the
LORD God is a sun and shield; the LORD bestows favor and honor; no good thing
does he withhold from those whose walk is blameless. 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개역개정) 84:12 O LORD Almighty,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you. (NIV)
이 시편은,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인 하나님의 집을 묘사하면서 시작이 됩니다. 그곳은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기쁜 곳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실한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며 갈망하는 이유입니다. 이곳이, 예배자가 실제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과 육체가 기쁨으로 노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집이 환영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심지어 참새와 제비도 그곳에서 집을 찾는다면, 겸손하고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를 외면하실 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 대하여 묘사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궁정에서 보내는 하루를, 다른 곳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더 좋아합니다. 그는 악인의 장막에 거할 때 얻을 수 있는 어떤 이익보다, 내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가장 낮은 직책을 더 좋아합니다. 이 시편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성전에서 환영 받는 것입니다. 신실한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의 삶에 대해 그들이 표현하는 만큼 다른 것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참으로 축복 받았습니다!
J. I. Packer, Wayne Grudem, and Ajith
Fernando, eds., ESV Global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2012), 794-5.
4. 찬양에 대한
묵상
이 찬양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여호와를 예배하고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이 인생에 최고의 기쁨이라는 고백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새롭게 한다라는 고백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깊은 영적인 교제를 누리는 것은,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독보적인 즐거움과 감격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감히 그것과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곳에서의 천 날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루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것인가?
참새와 제비는
가장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심지어, 그러한 미물일
지라도 하나님의 전에서 보금자리를 얻고 그분의 사랑을 얻는다. 마치 그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풍성하고 따뜻하기 때문에, 그분을 간절히 찾고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신다.
세상에서 무시 받고 절망하고 지친 사람, 자신의
죄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낙망한 사람이 이 은혜의 주님을 찾을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완전한 용기와
소망을 주님께로부터 얻게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이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가까이하는 것의 독보적인 가치를 새롭게 경험하기를 원한다. 또한 우리의 삶 전체가 오직 주님을 향하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은혜를 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합신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생각이 종종 납니다. 저의 마음에는, 이제 드디어 주의 종이 되는 과정에 들어간다는 설레임, 그리고 과연 그 과정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설레임보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 한분 한분은 매우 탁월하셨지만, 그러나 각자가 주시는 메시지와 방향성은 다소 다른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정말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또 목회는 무엇일까? 그런 질문들이 늘어났습니다.
저는 정말 좋은 설교학 교수님 두분께 배웠습니다. 정창균 교수님과 박완철 교수님은 모두 설교의 대가이셨습니다. 저의 설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셨고, 그것은 매우 탁월하고 또 성경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설교를 하면 할 수록 설교에 대한 갈급함, 그리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커졌습니다. 그 두분의 방향이 아닌, 결국에는 성경적으로 그러나 충분히 저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 저의 궁극적인 길을 제시해줄 그런 분은 만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의 10년전에, 아마도 Reformed Seminrary 디민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 세미나 강의안을 우연히 공부했습니다. 그때도 배울 것이 참 많다고 느꼈지만, 그 공부가 저의 설교의 방향성을 궁극적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 듯 합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책들도 몇권 정독했지만, 그렇게 제 자신에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 자체"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마 예전에도 들어보았겠지만, 완전히 새롭게 들렸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듯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제가 성도로, 목회자로 고민하던 부분들을 거의 대부분 채워준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설교야 말로 한 사람, 그리고 설교자를 보여줄 수 있는 "정수"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을 통해, 성경, 그리고 신학, 그리고 목회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이 종합되어서 하나의 물줄기를 이룬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훌륭한 신학자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할 때에 팀켈러 목사님의 최고의 강점은, "대부분의 분야에 대한 탁월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분야만 잘해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설교의 내용과 구성부터 시작해서 전달까지 "하나의 하모니"입니다. 특별히 내용을 만들고 전개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식견과 이해와 종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팀켈러 목사님이 다른 분들보다 독보적으로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틈나는대로 팟케스트를 통해서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설교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탁월한 것을 배우고자 하는 눈물나는 고된 노력입니다.
사실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제 마음에 큰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이 과정을 견딘다는 것은 제가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제 삶의 여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아마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공부하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다른 더 좋은 것들이 나에게 있지 않을까?"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때가 후회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은퇴할 때 쯤 되어서 과거를 돌아보면, 아마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는 것만이, 후회가 없는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보통 설교자들이 세번 설교에 한번 은혜를 끼치면 탁월한 설교자라 부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모든 설교가 은혜가 됩니다.
물론 설교의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니지만, 그 설교 안에서 반드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계속 공부하면서 탁월함을 배울 수 있다면, 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요?
그래서 배우는 부분을 가능한대로 간단하게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정기적인 정리이기 때문에 여유가 되는대로 가능한대로 적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정리하는 것은, 결국 제가 제 말로 정리하는 것이 저의 영혼에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분들에게, 작은 격려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결국 목회자는,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평생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치기 쉬운 이 길 속에서, 함께 한걸음씩 전진하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에 시간을 내어서 거실 식탁에 공부하기 위해서 앉았습니다. 차에서 몇번 들은 설교의 내용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내는 저를 배려해주었고, 아이들은 잠깐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요즘에 제가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입니다. 그중에 약 30퍼센트는 좌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면 걸음마를 배울 때 아이는 많이 넘어집니다. 걷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간절한데 아직 몸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는 때론 용을 쓰고 때론 눈물을 흘립니다.
설교를 여러번 듣고 스크립트를 확인하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나 영어 실력의 부족입니다. 사실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팀캘러 목사님의 책의 영어는 상당히 쉬운 편이었지만, 설교는 훨씬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특히 이번에 들은 Thy Word는 정말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연히 내용은 최고였습니다. 일단 시편 119편으로 이렇게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타트랙도 등장합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나 성경적인데 자서전적인 느낌도 나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내용은 너무나 환상적인데,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했습니다. 전체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계속 읽고 묵상하면서도, 목사님이 의도하신 그 의도가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아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어제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지나고, 오늘 새벽 예배를 마치고 다시 한번 내용을 돌이켜보니 어제보다 훨씬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어렵게 한걸음을 내 딛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드디어 조금 더 마음에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설교에서 제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입니다. 제가 설교를 듣고 이해할 때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그분을 나 자신보다 더 높고 거룩하신 분으로 인정"하는데에서 드러납니다.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제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들은 논리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의 중요한 논지는, 내가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와는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분이시고, 그분은 우리보다 높은 분이시며, 그분은 내가 감히 인지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시편의 저자들이 하나님과 씨름하고 그분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라는 맥락으로 풀어냅니다.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 것은, 후반부에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설교의 부분 부분은 충분히 이해한 듯 한데, 앞 부분과 뒷 부분의 가장 큰 연결고리를 여전히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언젠가 제 자신을 뛰어 넘어서 가장 아름다운 내용을 마음에 품고 싶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는 여전히 가장 소중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