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일 일요일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성도의 인생을 지탱하는 그 견고한 기초 / I Surrender - Brooklyn Tabernacle Choir


우리가 탁월한 이들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가장 간단하게 말한다면, "통찰력"을 얻기 위함입니다. 성경의 작은 부분들을 파고 들어서 살펴보는 것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가능한 일이지만, 그러나 큰 그림 속에서 본질을 짚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그러나 성경 전체 속에서 언약이 가지는 의미와 점진적인 변화,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 라는 본질적인 관점 안에서의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신약을 이야기하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가 오셨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구약을 이야기하면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은, 구약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다분히 조건적으로 보이도록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가 있을 것이다 라는 맥락의 본문들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본인이 분명하게 인식하든지 혹은 은연중에 어색하다고 느끼든지) 구약과 신약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반으로 한, 그분의 언약의 통일성입니다.

감사하게도 5년 전쯤에, 마이클 호튼의 언약 신학을 통해서 새롭게 성경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깨닫고 그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려운 책을 파고들어가 공부하는 것도 좋겠지만, 때론 더 짧은 그러나 주제의 핵심을 잘 담고 있는 글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업이 있고, 모든 사람이 목회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유익 중 하나는, 영어를 좀 더 가까이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어 자료들을 좀 더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시켜 주는 Logos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이라도 영어에 관심있는 신앙인을 만나게 된다면, 꼭 로고스를 사용하라고(프로그램 자체는 무료이기 때문에), 그리고 스터디 바이블과 좋은 자료들을 몇가지 구입해서 개인 성경 공부를 시작 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영어가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번역된 자료를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또한 편리한 방법입니다.)

The Reformation Study Bible은, 개혁주의 입장을 바탕으로 쓰여진 스터디 바이블입니다. 그리고 로고스 프로그램 안에서 디지털 화 되어서, 아주 편리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스터디 바이블을 구입한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각 성경 본문에 대해서 개혁주의를 바탕으로 한 좋은 해석들을 담고 있고, 특별히 전체 성경의 맥락을 통찰력 있게 파악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고 짧고 핵심적인 글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에 최근에 번역된 ESV Study Bible도 너무 훌륭하기에 함께 참고하지만, 빠르게 신학적인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The Reformation Study Bible을 꼭 참고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공부하다가, 성도님들이 많이 어려워하시는 언약에 대한 좋은 글을 스터디 바이블 안에서 읽었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짧은 내용 안에 은혜의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잘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호튼의 책을 파고 들어간다면 더 유익하겠지만, 그러나 이 내용 정도로도 그 시작으로는 그리고 전체 그림을 그리는데는 충분합니다.

신학이, 성도의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또한 제 견해로는, 많은 성도들은 지나치게 많은 신학적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요구 받습니다. 한국 교회가 전체적으로 지적인 수준이 낮다는 일반적인 통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목회자가 신학교에서 배우듯이, 모든 신학의 영역들을 섭렵해야만 훌륭한 성도가 되는 것 처럼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받아들입니다. 조금 우습지만 진지한 질문입니다. 과연 모든 성도들이, 신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아야만 하는 걸까요?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필요한 만큼 배우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하나님의 언약이 그 최우선 순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는 가에 대한 내용이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용납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며, 그 완전한 관계를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왜 보내셨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하나의 연속적인 말씀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통찰입니다. 우리의 삶의 본질이고 그 근본입니다. 그래서 아래의 내용은 한 자 한자 깊이 묵상해 볼 만한 내용입니다. 영어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읽고 이해하실 수 있도록, 간단한 해석을 더했습니다.

성도로서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 안에 거하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우리의 삶이 지치고 흔들릴 때에,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그분의 은혜 안에
온전히 더욱 거할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행복. :)

God’s Covenant of Grace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Covenants in Scripture are solemn agreements, negotiated or unilaterally imposed, that bind the parties to each other in permanent defined relationships, with specific promises, claims, and obligations on both sides (e.g., the marriage covenant, Mal. 2:14).
성경 안에서 언약은, 엄숙한 계약인데, 협상되었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부과된 것으로, 계약 당사자들간에 특별한 약속들이나, 선포들, 그리고 의무들을 가지고 영구적으로 확정된 관계들 안에서 각자들을 언약 당사자들로 묶는 것입니다.

When God makes a covenant with His creatures, He alone establishes its terms, as His covenant with Noah and every living creature shows (Gen. 9:9). When Adam and Eve failed to obey the terms of the covenant of works (see Gen. 3:6 and theological note “The Fall”), God did not destroy them, but revealed His covenant of grace by promising a Savior (Gen. 3:15). God’s covenant rests on His promise, as is clear from His covenant with Abraham. He called Abraham to go to the land that He would give him, and promised to bless him and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through him (Gen. 12:1–3). Abraham heeded God’s call because he believed God’s promise; it was his faith in the promise that was credited to him for righteousness (Gen. 15:6; Rom. 4:18–22). God’s covenant with Israel at Sinai is in the form of the ancient Near Eastern suzerainty treaties. These are covenants imposed unilaterally by a powerful king on a vassal king and a servant people.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물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노아와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과의 언약이 보여주듯이, 하나님께서는 그 조건들을 스스로 설정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행위 언약의 조건들을 순종하는데에 실패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구원자를 약속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분의 언약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 처럼, 그분의 약속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주실 땅으로 그를 보내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복주시고 또한 그를 통해서 모든 족속을 복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고대 근동의 종주권 조약과 형태가 유사합니다. 고대 근동의 종주권 언약들은, 힘있는 왕에 의해서, 자신의 부하 왕과 백성들에게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것입니다.

Although the covenant at Sinai required obedience to God’s laws under the threat of His curse, it was a continuation of the covenant of grace (Ex. 3:15; Deut. 7:7, 8; 9:5, 6). God gave the commandments to a people He had already redeemed and claimed (Ex. 19:4; 20:2). The gracious promise of God’s covenant was further defined through the types and shadows of the law given to Moses. The failure of the Israelites to keep His covenant showed the need for a new covenant that would bestow the power to obey (Jer. 31:31–34; 32:38–40; cf. Gen. 17:7; Ex. 6:7; 29:45, 46; Lev. 11:44, 45; 26:12).
비록, 시내산 언약이, 그분의 저주의 협박 아래에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것이 요구되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의 연속선 상에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이미 구원하셨고 그렇게 확증하신 백성에게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의 은혜의 약속은,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의 형태들과 그림자들을 통해서 더욱 설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데에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한 것은, 그것을 순종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새로운 언약의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God’s covenant with Israel was preparation for the coming of God Himself, in the person of His Son, to fulfill all His promises, and to give substance to the shadows cast by the types (Is. 40:10; Mal. 3:1; John 1:14; Heb. 7–10). Jesus Christ, the Mediator of the new covenant, offered Himself as the true and final sacrifice for sin. He obeyed the law perfectly, and as the Second Adam (second representative head of the human race) He became the inheritor, with those united with Him by faith, of all the covenant blessings of peace and fellowship with God in His renewed creation. The temporary Old Testament arrangements for imparting those blessings became obsolete when what they anticipated was realized.
하나님의 이스라엘과의 언약은, 그분의 아들의 위격 안에서, 그분의 모든 약속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리고 예표들에 의해서 보여졌던 그림자들에 본질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의 오실 것에 대한 준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며, 죄를 위한 참된 그리고 최후의 희생으로써 자기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는 또한 두번째 아담으로서(인류의 두번째 대표로서) 율법을 완벽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써 그분과 연합되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과의 화평과 교제의 모든 언약적인 복을 상속하는 상속자가 되셨습니다. 이러한 복들을 주기 위한 임시적인 구약의 방법들은, 그것들이 기대하던 것들이 실현되었을 때에,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쓸모 없는 구식의 것이 되었습니다.

As Heb. 7–10 explains, through Christ God inaugurated a better version of His one eternal covenant with sinners (Heb. 13:20)—a better covenant with better promises (Heb. 8:6), based on a better sacrifice (Heb. 9:23) offered by a better high priest in a better sanctuary (Heb. 7:26–8:6, 11, 12, 13). This better covenant guarantees a better hope than had ever been made explicit by the former version of the covenant—glory with God in “a better country, that is, a heavenly one” (Heb. 11:16; cf. v. 40).
히브리서 7-10장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들을 위한 더 좋은 버전의 그분의 영원의 언약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더 좋은 약속의 더 좋은 언약인데, 더 좋은 성전에서 더 나은 대 제사장에서 드려진 더 나은 희생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이 더 나은 언약은 더 나은 희망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이전 언약에 의해서 명백하게 외적으로 만들어져 왔던 것인데, 그것은 더 나은 본향,  하늘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광입니다.

The fulfillment of the old covenant in Christ opens the door of faith to the Gentiles. The “offspring of Abraham,” the community with which the covenant was made, was redefined in Christ—the final and definitive offspring of Abraham (Gal. 3:16). Gentiles and Jews who are united to Christ by faith become Abraham’s offspring in Him (Gal. 3:26–29), while no one outside of Christ can be in a saving covenant relationship with God (Rom. 4:9–17; 11:13–24).
그리스도 안에서 옛 언약이 성취된 것은, 이방인들을 향한 믿음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옛 언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동체인 아브라함의 자손은, 마지막이자 가장 결정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정의되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누구도 하나님과의 구원의 언약의 관계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The goal of God’s covenantal dealings is, as it has always been, the gathering and sanctifying of the covenant people “from every nation, from all tribes and peoples and languages” (Rev. 7:9), who will one day inhabit the New Jerusalem in a renewed world order (Rev. 21:1, 2). Here the covenant relationship will find its fullest expression—“they will be his people, and God himself will be with them as their God” (Rev. 21:3; cf. Gen. 17:7 note; Ex. 29:45, 46). Towards this goal God’s shaping of world events still moves.
하나님의 언약의 관계는,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언젠가, 새로워진 세계의 질서 안에서 새 예루살렘에 거주할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들과 방언들로부터, 언약의 백성들을 모으는 것이고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의 관계에 대한 충만한 표현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될 것이고, 하나님 자신은 그들의 하나님으로써 그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세계의 사건들을 섭리해 가시는 것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The covenant framework embraces the entire economy of God’s sovereign grace. Christ’s heavenly ministry continues to be that of the “mediator of a new covenant” (Heb. 12:24). Salvation is covenant salvation: regeneration, justification, adoption, and sanctification are covenant mercies; election was God’s choice of the members of His covenant community, the church. Baptism and the Lord’s Supper, corresponding to and replacing the old covenant rites of circumcision and Passover, are covenant ordinances. God’s law is covenant law, and keeping it is the truest expression of gratitude for covenant grace and loyalty to our covenant God. Covenanting with God in response to His covenanting with us should be a regular devotional exercise for all believers, both in private and at the Lord’s Table. An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 of grace guides us through, and helps us to appreciate all the wonders of God’s redeeming love.
언약이라는 틀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전체적인 경륜을 포용합니다.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은,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계속됩니다. 구원은 언약적인 구원입니다. 즉 중생, 칭의, 양자삼음 그리고 성화는 언약적인 은혜입니다. 그리고 예정은, 교회 즉 그분의 언약적인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례와 성찬은, 유월절과 할례라는 옛 언약의 의식에 대한 상응하는 것이자 또한 그것을 교체하는 것이고, 언약적인 규정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언약적인 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그분의 언약적인 은혜에 대하여 가장 진실한 감사의 표현으로써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언약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성찬에서 정기적인 신앙의 연습이 되어야만 합니다. 은혜의 언약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의 모든 놀라움들로 우리를 인도해 가며, 또한 그것에 대하여 감사하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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