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기적이지만, 하나님께서 더 특별히 인도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에게는 지난 반년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볼티모어로 인도하셨고, 이제 6개월이 지났습니다.
전화 통화 중에 어떤 분이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목사님, 이제 좀 적응이 되 가시죠?" 사실 저는 이 대화를 나눌 때에도 이곳에서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그분이 민망하실까봐 대답은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예,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보니 여전히 적응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가 뜨기 전에 교회로 오고, 해가 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제서야 약간 적응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한 주에 다섯편 정도를 해야 하고 또 가능한대로 심방을 해야하는 것도 이제서야 약간 적응이 되었습니다. 제 자신만 살피지 않고 가족들을 살피고 돌보는 것도 이제서야 약간 적응이 되었습니다. 제가 볼티모어 교회 담임 목사라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책임이 정말 크다는 것도 이제서야 아주 약간 적응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아직 충분히 적응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내는 웃으면서 이야기하더군요, "담임 목회 한 6년 한 사람 같아" 칭찬해 주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속으로는 여전히 낯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것을 지나치게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감당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고, 새로운 각오로 감당하고, 실패해도 넘어지는 것이 저의 인생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중첩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내를 처음 만난 스무살 중반의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의 생활과 사역과 고단했던 시간들과 행복했던 모든 것들이 마치 얇은 종이들이 겹치는 것처럼 하나로 겹쳐 보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보이고, 이렇게 쌓여가는 저의 인생 자체가 낯설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인생 자체가 아직도 적응 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두주 정도 전에 심하게 아팠습니다. 아마 미국에 와서 두번째로 심하게 아픈 듯 합니다. 최대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지나친 스케쥴과 과로로 인해서 거의 이틀동안 누워만 있었습니다. 지나간 반년의 피로와 부담스러웠던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번 심하게 아픈 이후에는, 건강에 대해서 더 조심스럽습니다. 아직도 회복중이고 최고의 몸과 영적인 상태로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서른 초반에는, 정말 위대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작은 인생에 자랑할 것도 없고, 그리고 자랑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랑은 정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저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오히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맡겨진 일에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이제 나를 드러내는 필요 없는 말을 적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격려하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 방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볼티모어 교회 담임 목사 위임패와 위임 예배 기념 컵을 놓아 두었습니다. 항상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야 하는 역할과,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흔들리고 헷갈리고 가끔은 엉뚱한 길을 걸어가지만, 그래도 제가 걸어가야 하는 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볼티모어에서의 반년은 정말 바빴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시느냐"라는 짧은 질문에 다 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폭풍처럼 닥쳐오는 일들을 감당하고 또 그 안에서 성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연히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저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지혜롭게 저를 도와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저에게 힘과 격려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가족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신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임을 계속 깨닫게 됩니다. 마치 몇년을 압축한 것 같은 반년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에게는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저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저 믿음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데 최선을 다하기 원하고, 그 안에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작은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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