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여호와를 향한 절대 신뢰, 그리고 지혜로운 실천 / 사무엘하 15장 24-37절 설교

 

지나간 며칠 몸이 좋지가 않았습니다. 능력은 부족한데 마음에 꿈이 많아서 밀어붙이다 보니 종종 몸살이 납니다. 그래도 여전히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즐겁고, 배우고 익히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분석하고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논리적인 매력입니다. 마음 속으로 탄복이 나옵니다. “.. 정말 멋지다!” 단순히 사람이 멋지다 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논리적인 아름다움이, 그리고 아름다움을 통해서 드러나는 성경의 진리가 마음에 황홀함을 안겨줍니다.

목회자는 스터디 바이블과 주석을 이용하지만, 그러나 이상의 것을 설교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상의 차원의 어떤 것을 설교해야 합니다. 설교는 주해를 풀어놓는 자리가 아니고, 주석가가 말을 그대로 옮기는 자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다양한 스터디 바이블들과 주석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의 내면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 신학적인 논리들과 강조점들을 충분히 설명하고 풀어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원래 Biblical Study Bible 관찰에 특화된 자료는 아닌데 이번에는 다윗의 현재 상황 그리고 잇대의 마음에 대해서 관찰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15:20 yesterday. Indicates a recent action. I do not know where I am going. Lit. “I am going where I am going”; an example of the figure of idem per idem, a formula that gives total freedom to the subject in how to act. In other words, David has no idea of his destination.

15:21 As surely as the Lord lives. Ironically, Ittai, a Philistine, makes an oath of loyalty to David based upon the covenantal name of the God of Israel. Many Israelites have deserted David, but these Philistines are loyal.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516.

Bible Speaks Today 스터디 바이블은, 전체적인 맥락을 항상 염두에 두고 해설을 하고 내용이 매우 충실합니다. 이번에도 좋았는데, 다윗의 믿음과 영적인 이해와 결단에 대해서 탁월하게 풀어 내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The ark was not to be seen superstitiously as a kind of invincible talisman. In crisis and weakness David appears at his most powerful, certainly in terms of spiritual understanding. He knows that God’s support for human enterprises can never be controlled or demanded by his people, though, as the next episode indicates, God’s sovereignty did not mean David could sit back and do nothing.

NIV Bible Speaks Today: Notes (London: IVP, 2020), 414.

NLT 스터디 바이블은 아쉽게도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자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충실한 신학적인 혹은 배경적인 통찰력들을 자주 제공해 줍니다. 이번에도 언약궤의 운반에 대한 이해를 크게 도와주었습니다.

15:25 take the Ark of God back: People fleeing invasion normally took their idols to avoid having the items fall into an enemy’s hands. The capture of a god could be interpreted by rebel elements to mean that the gods had abandoned the ruling dynasty. However, the Ark was not a mere idol or talisman (cp. 1 Sam 4:3–11; 5:6–6:9).

New Living Translation Study Bible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08), 삼하 15:25.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부분은, 어린시절부터 고민하던 부분입니다. 루이스와 쉐퍼의 중에서 인격적이고 전능하시며 거기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풀어낸 것입니다. 후반부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적용은, 내용적으로는 제가 준비한 것이고, 구조에 있어서는 팀켈러 목사님의 설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분이 가진 어떤 독특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많이 경험하고 있고 그것을 반영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이른 새벽에, 현장에서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서 들으시는 성도님을 때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설교에 은혜 받았다고 하시면서 분께서 아침을 사다 주셨습니다. 저를 배려해주신 것에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행복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격과 은혜를 함께 누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과 함께 있어서 감사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지만, 동시에 저의 개인적인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설교에 은혜를 받은 분들은, 저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분들입니다. 감사의 표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열심히 해야죠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목회자도 성도도,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누릴 자격과 특권과 방향과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무엘하 15 2-37 설교

최근에 연예인의 가정 문제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행복하고 지내는 이미지로 보이던 사람인데, 알고보니 바로 자신의 가족 안에서 심각한 정서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형제를 고소하고 부모가 자녀를 폭행하는 일들이 뉴스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사람이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을 있겠지만, 그러나 가장 어려움은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인 같습니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가족이 나에게 등을 돌릴 때에, 견디기 어려운 배신감과 충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지금 다윗의 상황이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서 주도 면밀하게 계획을 짜고, 결국에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어습니다.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성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도망 가야만 하는 신세가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가장 위기라고 말할 있겠습니다. 다윗은 잃을 것이 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현재 상황을 15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지금 다윗은 자기 자신도 전혀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없으며, 그대로 한치 앞도 없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말씀들과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성경은 지금 다윗의 도망하는 모습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개인적인 위기 속에서 그리고 왕궁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대사와 이들의 행동을 통해서,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시고 있다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의 부분에서는, 가드 사람 잇대가 왕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자에 불과한 다윗 왕을 따르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는 그냥 맹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한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다윗 왕과 하나님 앞에 얼마나 진실하게 충성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윗과 나라의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신실함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 왕을 따르는 많은 백성들도 예루살렘 성을 떠나서 다윗 왕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단순히 사람들만 다윗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니 하나님을 모시는 대제사장인 사독과 아비아달도 다윗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의 몸만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24 앞에 "보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굉장히 주목해야 하는 장면임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분명한 것입니다. 다윗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유일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의 관습 속에서, 만약에 자신이 섬기던 신을 빼앗긴다면 신이 왕조를 포기했다라는 관념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에 다윗이 언약궤를 압살롬에게 빼앗긴다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제 다윗은 끝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대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황급히 언약궤를 메고 도망 나올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25절에 보니 "보라"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강조를 하고 있는가? 다윗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이렇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너무 이상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사람들이 보기에는 반드시 언약궤가 같이 가야합니다. 지금 다윗이 자신의 왕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신이야 말로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밝히 보여주기 위해서 언약궤를 가지고 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다시 가져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이 하는 고백이 정말 기가 막힌 것입니다. 25절과 26절은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25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궤와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주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다윗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 것인가? 엄청난 믿음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믿음이라는 것은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여호와의 위대하심 전능하심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왕위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설령 압살롬이 언약궤를 차지한다하더라도, 감히 압살롬이 여호와를 어떻게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다윗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여호와께서 자신을 기뻐하시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혹시라도 여호와께서 자신을 기뻐하시지 않으시면 그래서 다시 왕으로 복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결과에 대해서 자신은 받아들이겠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여호와께 맡겼습니다. 다윗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압살롬에게 승리하는가 아닌가, 나의 생명이 살아날 것인가 아닌가, 혹은 다른 사람이 나를 왕으로 인정하는가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장 위기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다윗의 마음 속에 가득찬 것은, 여호와를 향한 절대 신뢰입니다. 그분이 나를 기뻐하시면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분이 나를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분이 어떻게 인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하겠으며 그분의 처분을 기꺼이 따르겠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절망적이고 밑바닥과 같은 상황 속에서 오히려 그의 놀라운 믿음이 빛이 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 속에서, 위기 속에서 다윗이 보여주는 신앙의 깊이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을 말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분명한 수준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신앙 생활을 때에는 어떤 신앙입니까? 그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인가? 부모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장 앞세우는 것이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자라면서 어떻게 성장하게 되는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신보다 위대한 존재이고, 부모는 자신보다 높은 어떤 차원에서 나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다윗의 신앙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보다 위대하신 분이시며, 자신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어떤 처분이라도 자신이 마땅히 따라가야할 자신의 왕이며 절대자이며 주인이며 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기도문의 위대한 부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의 목적이 이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 자체를 여전히 어린 아이가 부모를 대하는 처럼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도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삶의 가장 위기와 절망 속에서, 오직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소망하면서, 여호와를 믿는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이러한 다윗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가장 성숙해진 모습으로 점점 변모하여서 내가 이루고 싶은 것에만 매달리며 그것을 전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나의 삶에서 최종적인 목적은 반드시 여호와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긴 다윗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뒤의 말씀을 읽으면서 약간 당황할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 자신의 막막한 미래를 완전히 맡긴 다윗은, 뒤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마치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사람처럼, 엄청난 지혜와 전략을 실시간으로 짜면서 상황에 대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상황이 다윗에게 계속 불리하게 흘러가는 처럼 보였습니다. 31절에 보니 압살롬 편에 아히도벨이 있다고 어떤 사람이 알려주었어 아히도벨은 원래 다윗의 사람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지혜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있었던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배신에 배신을 연속으로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상황에서 무엇을 하는가? 가장 뛰어난 지략가를 빼앗긴 다윗의 입장에서는 여호와께 기도할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1절에 “여호와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사람이 후새입니다. 후새는 다윗을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전략을 것입니다. 후새가 마치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에게 투항한 처럼 꾸며서, 아히도벨의 계략을 파악하도록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사독과 아비아달도 함께 하도록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아들들도 거짓으로 다윗을 버린 처럼 꾸미도록 전략을 것입니다.

부분이 아주 흥미롭지 않습니까? 부분에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어서 그는 자신이 있는 최고의 지략을 짜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것은 대충 만들어낸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상황이 것인지를 충분히 예상하면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목표로 하면서, 압살롬을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짰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반드시 살펴볼 것은 "도대체 하나님의 주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특별히 저와 같은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해야 합니다" 라고 설교를 듣고 우리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테니 너희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라 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가 놀라는 것은 무엇인가? 전체적인 구원의 역사와 흐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 성취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에서 동시에 무엇을 보는가?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우리가 지혜를 발휘해야 하고, 우리가 마땅히 우리의 해야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신앙은 수동적이라기 보다는 매우 적극적이라고 말할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신앙은 생각하고 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천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하는 매우 실천적인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0 주를 기쁘시게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것은 영어 번역들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신중하게 찾으라, 구별해라, 배워라” 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이 있는데, 주권적인 여호와께서 가만히 있는 성도에게 저절로 깨닫게 하시지 않고, 성도는 마땅히 자신의 최선의 지혜를 동원하여서 여호와를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지혜롭지 못한 반대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26 나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동일하게 모두가 말씀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은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 것인가? 말씀을 듣고 행하는가 그리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가 바로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질문할 있겠습니다. "아니 목사님 그럼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최선의 지혜를 동원해서 오늘 하루를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보았을 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도덕적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이 혹은 도덕이 여호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선하신 여호와께서 선을 명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만약 하나님이 다스리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과 실천과 지혜와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만약에 우주를 다스리는 인격적인 존재가 없다면, 도대체 우리가 지혜를 발견해나가고 선을 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혜를 동원하고 기꺼이 실천을 하며 살아갈 있는 것은, 전능하시고 다스리시는 여호와께서 존재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지혜와 우리의 전략과 실천을, 기뻐하시며 응원하시며 칭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모든 지혜와 선한 선택들과 실천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친히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천의 위에 아래에 옆에 안에 존재하시며, 그분의 온전한 뜻을 친히 이루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설령 우리의 지혜와 실천이 완전하지 않아도, 심지어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여전히 전능하시며 완벽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믿기 때문에,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모든 실패조차도 온전히 사용하셔서 그분의 뜻대로 역사를 끌어 가시는 여호와를 믿기 때문에, 실패와 부족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있는 사람들로서 마음껏 우리의 최선을 다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어디에서 가장 확실하게 흔들림없이 확인하게 되는가? 우리의 완전한 인도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모습은 어떠한가?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으로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그는 자기 자신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도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를 향한 신실한 믿음은 있지만, 여호와께서 자신을 어떻게 처분하실지 미래를 알지 못하는 두려운 상황 속에 있는 것입니다. 백성은 다윗을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깊은 불안한 가운데 왕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장 완전한 인도자가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한번도 불순종한 적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태복음 3 17 말씀입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께서는, 다윗처럼 방황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으로서 영원 전부터 구원의 계획에 동참하시고 시간 속으로 친히 들어오셔서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분은 한번도 흔들림 없이 유일한 목적인 십자가를 향하여 전진하신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20 28절에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분은 한번도 그분의 백성을 실망시키시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다윗의 백성은 도망하는 다윗을 염려하며 따르고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연합하여 계시며 그분이 이루시는 영원한 구원의 길로 지금 순간에도 우리를 이끌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6 5절입니다.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생명이신 그분에게 온전히 연합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고 그의 부활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을 따르는 백성들은 이렇게 저렇게 불안하며 고생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통하여 모든 이들이 실패 없이 여호와께 나아가도록 하며 온전히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과거에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지금 순간에 지금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7 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시며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연합하셔서 지금 우리를 인도하시는 흔들림 없으신 우리의 왕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지혜와 전략으로 오늘의 삶을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의 삶의 가장 위기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원합니다. 가장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저를 빚어가심을 믿고 신뢰하며 따라가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 저의 가운데 참된 실천이 있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며 전능하시기 때문에 저의 삶의 모든 노력을 주님의 가운데 사용하심을 믿고, 저의 삶의 최선을 경주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 "설교문" 전체 모음
https://jungjinbu.blogspot.com/2022/11/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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